[ 윤아영 기자 ]
서울에서 다주택자 매물이 ‘급급매’ 가격에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급히 현금이 필요하거나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이들이 일반 호가보다 확 낮춘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집주인과 매수 대기자들이 가격을 놓고 눈치싸움을 하며 ‘거래절벽’ 상태가 서너 달째 이어지고 있다”며 “장기간 집값과 거래량이 반등하지 않자 돈이 급한 집주인들이 더 버티지 못하고 급매물로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2억~4억원 저렴한 ‘급급매’ 속속 거래
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도곡동 도곡한신 1동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지난달 말 11억7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지난해 10월 14억4000만원에 최고가로 거래된 주택형이다. 최근 매물 호가도 13억5000만~14억5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도곡동 D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인 집주인이 급하게 정리하면서 계약금뿐 아니라 잔금까지 한 번에 현금으로 치를 수 있는 매수자를 찾았다”며 “사정이 급하다보니 시세보다 2억~3억원 이상 저렴하게 거래가 성사됐다”고 전했다.
강남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 매물도 지난 1월 14억원(1층)에 거래됐다. 지난해 9월 이 주택형의 최고 거래가격(18억5000만원)에 비해 4억5000만원 떨어졌다.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인기가 가장 없는 1층 코너 매물”이라며 “집주인이 사정이 급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급매였다”고 설명했다.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집주인도 있다. 영등포구 당산동 진로아파트 전용 162㎡는 지난 1월 7억6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이 주택형의 현재 시세는 11억원대다. 직전 실거래가격이자 최고 가격은 지난해 5월 8억4500만원이다. 인근 중개업소들의 말을 취합하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6억원을 돌려주기 위해 급매로 던졌다. 당산동 A공인 관계자는 “전세 시세는 6억5000만~7억원대지만 주변에 전세 물량이 넘치고 대형이어서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세입자를 찾다 실패하자 결국 급매로 매각했다”고 전했다.
서울 전역으로 퍼진 ‘급급매’
‘급급매’ 매물은 강북으로 확산하고 있다. 갭 투자자(전세와 매매 가격의 갭을 이용한 소액 투자자)가 많이 진입한 강서구, 노원구, 강북구 등에서도 급급매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마곡동 마곡엠밸리 15단지 전용 84㎡ 아파트는 지난 1월 8억9800만원에 실거래됐다. 작년 9월 11억원에 거래됐던 주택형이다. 현재 호가는 10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노원구 중계동 롯데우성 아파트 전용 115㎡는 지난해 최고가(9억4000만원)에 비해 1억원 떨어진 8억4000만원에 지난달 거래됐다. 상계동 불암현대 아파트 전용 84㎡ 거래가도 지난해 5억2000만원에서 지난달 4억2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서울 새 아파트 분양권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등포구 신길뉴타운의 보라매 SK VIEW(2020년 입주 예정)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10억45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찍었다. 당시 분양권 호가는 12억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매수 문의가 줄어들면서 매매가격이 1월 7억120만원, 2월 7억7720만원 등 7억원대로 떨어졌다. 한 분양권 전문가는 “중도금 대출 승계가 까다롭고, 대출이 초기 분양 계약자보다 덜 나와서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큰 편”이라며 “경기가 안 좋아지니 분양권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봄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일시적으로 쏟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6월 1일 이전에 보유 주택을 정리해야 보유세 부담을 덜기 때문이다. 반면 매수자의 관망세는 이어지고 있어 급매물이 쌓일 경우 가격 하락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유주택자, 갈아타기에 나선 일시적 2주택자 등 기존 주택을 기한 내 매각해야 하는 집주인들은 현재 시장 분위기에 부담을 느껴 시세보다 싸게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 전체의 하락을 이끌 만큼 많이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아직까지는 강남권 ‘급급매’가 단지별로 한두 건에 불과해 전체 시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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