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문화부 기자) 지난 28일 대형 러시아 화물선이 부산 광안대교와 충돌했습니다. 해양경찰이 해당 선박 선장을 긴급체포했는데, 러시아인 선장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6%였다 합니다. 해상 음주운전 입건 기준인 0.03%를 훌쩍 넘는 만취상태였던 겁니다. 해경 조사에서 그는 “충돌 이후 술을 마셨다”는 발뺌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서 더 분노를 사고 있는데요.
이 와중에 마침 지난주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신간 중 ?술에 취한 세계사?(미래의창)라는 책이 눈길을 끕니다. ‘음주 운전’ ‘음주 폭력’ ‘알코올 중독’ 등 술과 관련해 마냥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또다른 시각으로 음주와 문화, 역사를 다룹니다. 술의 성분은 동일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마시는 술의 기원과 문화적 연관성에 따라 각양각색의 태도를 보인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열네살 때부터 지금까지 음주에 관해 방대하고 실증적인 조사를 해왔다는 저자는 ‘잉키풀’이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파워블로거 마크 포사이스입니다. ‘인간은 술꾼으로 태어나고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그는 “나는 안타깝게도 만취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시공간을 넘나들며 파헤치는 만취의 역사는 흥미롭습니다.
음주와 만취의 어두운 그림자는 비단 오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술은 처음부터 인간과 함께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음주는 인간 사회 깊숙한 곳에 흔적을 남겨온 게 사실입니다.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 있으면 한 번은 술에 취한 채로, 또 한 번은 맨 정신으로 그 문제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두 번 다 같은 결론이 나오면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술은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였고, 바이킹은 벌꿀술 미드가 모든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사람들이 무엇을 마셨는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누가 마셨고 왜 마셨는지를 추적해 갑니다. 그를 통해 신석기 시대의 주술사는 영혼의 세계와 소통하려고 술을 마셨고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취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전이 지어지고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맥주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눈길을 끕니다. 저자는 “식량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며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까닭은 식량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도 책에서 다루는 것은 ‘짧은 역사’일뿐이라고 인정합니다. 음주의 역사를 다루려면 인류 전체의 역사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겠죠. 결론은 ‘만취는 모순 덩어리’라고 언급한 ‘맺음말’에서 정리가 됩니다. “만취는 만사를 긍정하게 만든다. 폭력을 일으키는가 하면 평화를 유도한다. 만취하면 노래가 나오고 잠이 온다. …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의 도락이자 몰락의 원인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위안이 되지만 가난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폭동의 원인이자 수입원이다. … 만취는 신을 체험하는 수단이자 신 그 자체다.” (끝) /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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