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부 인사가 밝힌 회담 전말
막판 실무협상까지 간극 못좁혀
[ 주용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모든 북핵 폐기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그랜드 딜(일괄타결)’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제외한 다른 핵시설 폐기에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이번 회담에 정통한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 회담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더 통 크게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올인하라”며 “우리도 올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올인(all in)’은 모든 돈을 한판에 거는 단판 승부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유엔이 2016~2017년 결의한 대북 제재 5건을 해제하라’는 요구가 거절당하자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김정은에겐 ‘백업 플랜’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영변 핵시설 외) 우라늄 농축시설과 같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북한이 놀란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미국은 사전에 ‘노딜(협상 결렬)’ 시나리오까지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결렬 가능성에도 대비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만으로 합의하면 곳곳에 핵을 숨겨둔 젊은 지도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북한의 제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참모진은 일괄타결 방식이 성공할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0)로 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북한의 시각차는 진작부터 노출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21~25일 하노이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의 막판 실무협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핵심 대북제재 5건을 푸는 방안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검토 끝에 “안된다”고 밝혔다. 5건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석탄, 원유·정유 거래와 해외 노동자 파견 등 북한의 ‘돈줄’을 죄는 핵심 제재로 이를 풀면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범위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북한은 회담 결렬 후 심야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지만, 실무협상 기간 내내 북한은 “오직 김정은 위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일관성 있는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도 영변 핵시설 폐기 범위에 대해 “아직도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비핵화 정의조차 끝까지 합의되지 않았다. 미국은 비핵화를 ‘북한의 모든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파괴’로 규정했지만 북한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회담장에서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메트로폴호텔 회담장에 마주 앉을 때까지 이견이 너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서두를 것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 건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합의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던 셈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김정은이 아직은 영변 외 핵시설을 해체하거나 WMD 프로그램을 동결할 준비는 안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일부 지역에 대한 비핵화만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진영 집회에선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룬다면 빛나는 경제적 미래를 갖겠지만, 핵무기를 갖는다면 어떤 경제적 미래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노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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