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장 반응이었습니다.
미국 동부시간 4일(일요일) 오후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중 무역협상이 최종단계에 와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7일께 정상회담을 열어 사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5일 월요일 아침 뉴욕 증시는 상승세로 출발했습니다. 장 초반 다우 지수는 100포인트 넘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전 10시반을 넘어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1시께 다우지수는 무려 450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결국 이날 200포인트 넘게 떨어진 채 마감했습니다.
갑작스런 나쁜 뉴스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날 오전 상무부가 12월 건설지출이 전달보다 0.6%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그리 중요한 지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모기지 금리가 하락해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지표였습니다.
시장은 별다른 이유를 찾지못하자 "뉴스에 팔아라" 라는 증시 격언을 떠올렸습니다. 또 “이미 주가에 다 반영됐다”고도 풀이합니다.
그동안 뉴욕 증시는 미중 무역협상 소식에 열광해왔습니다.
미 중앙은행(Fed)이 1월 초 시장에 항복한 뒤로 미중 무역협상 진전 뉴스는 계속해서 시장을 끌어올리는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최종 단계, 곧 서명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하락한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이상한 반응이었습니다.
일부에선 여전히 '미북 정상회담 데자뷰'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미중 협상과 미북 협상의 상황은 정말 비슷합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갈 길이 멀다"고 했지만 며칠만에 벌써 서명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도둑질 문제나 국유기업 보조금 금지 등이 빠진 ‘스몰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미북 정상회담도 '스몰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결렬됐지요.
월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협상에서도 ‘스몰딜’을 택하지 않고 그냥 걸어나올 수 있다고 의심합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내년 말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든 최고의 카드들(북한, 중국)을 지금 소진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번에 북한 핵을 아껴둔 것처럼 미중 무역전쟁 카드도 써버리진 않을 것이다. (김정은과의 협상도 막판에 갑자기 새로운 핵기지뿐 아니라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주장해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것이란 관측도 있음)
트럼프로서는 내년에 이 두 카드를 적절히 조합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재선을 쉽게 달성하는 길이다.
2. 미북 협상 결렬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이었다. 제대로 된 판단력, 냉철한 결단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마저 "배드 딜을 하지 않은 건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중국과 서둘러 합의하는 데 대해 반대가 많다.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지난 28일 의회 청문회에 섰을 때 미 여야 의원들은 강경파 라이트하이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무역협상을 박차고 나온다 해도 비난받을 것 같지 않다. 기술 도둑질을 멈추지 않겠다는 중국을 비판하면 된다.
과연 트럼프는 미중 무역협상을 스몰딜로 타결시킬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스몰딜 대신 결렬을 택하고 책임을 중국에게 떠넘길까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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