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령화 정책마저 실패할 수 없다

입력 2019-03-05 18:21  

정치논리에 휘둘려 제 길 못찾은 고령화 정책
현금 복지로 일관하다 실업·빈곤화로 추락
기술변화 따른 '숙련화'로 노동·교육 바꿔야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



지난 30년 동안의 정부 정책 중 가장 후회해야 할 정책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출산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출산율이 격감하던 1990년대에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때를 놓치고 해법을 찾는다고 허둥지둥했지만 방향을 잃은 채 실패를 거듭했다. 이젠 저출산의 공포에 떨고 있다.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제도적 문제는 놔두고 돈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손쉬운 해법은 나쁜 해법이 됐다. 각종 출산수당을 새로 도입하고 기존 수당의 액수를 높이면서 출산과 관계가 없는 사업임에도 저출산을 핑계로 돈을 마구 투입했다. 지난 10년 동안 150조원, 최근 2년간 58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작년에는 결국 출산율 1명대가 붕괴하고 0명대에 접어들었다.

고령화 문제도 오판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른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 고령화 정책의 방향을 상실했다. 기초연금을 늘리고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정도의 문제로 가볍게 봐왔다. 고령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다 보니 고령화는 곧 빈곤화가 돼버렸다. 고령화에 따라 소득격차가 커지는 문제와 그 이유에 주목하지 않았다. 한국은 65세가 넘는 고령 근로자 10명 중 4명이 최저임금 이하에서 일하고, 고령층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높다. 65세 이하의 소득불평등은 지니계수가 0.28로 매우 낮지만 고령층은 0.42로 훌쩍 올라간다. 고령화에 대비하지 않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고령화를 복지로 대응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연금이나 수당 인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력 감소와 이에 따른 생산 및 소비 감퇴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면 복지 재정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다. 늘어가는 세금 부담은 전 국민의 생활을 악화시키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켜 악순환을 일으킨다. 인구 비중이 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고령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악순환은 시작에 불과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이 더욱 둔화되고 있고 소득불평등은 더욱 커지면서 세대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뒤덮인 이유다.

나이가 많은 노동력도 쓰기 나름이다. 고령화와 함께 기술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령 근로자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즉 숙련도가 높다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숙련도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법원은 직종별로 정년 나이를 다르게 판결한다. 선진국은 아예 정년을 없앴다. 숙련도를 키우도록 도와주면 고령화가 빈곤화로 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신기술을 장착한 기계설비와 숙련 노동은 보완관계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를 ‘숙련화’로 보완해 나가면 노동력 부족과 성장 잠재력 약화를 해소하면서 젊은 세대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중소기업 구인난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복지에 중독된 정치 논리가 적극적인 고령화 정책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은 물론 고령층 빈곤도 해결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공약이 판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령화를 숙련화로 대비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노동시장과 교육제도를 바꾸는 일은 외면하면서 말이다. 좌파 정치권은 저출산이나 고령화 등 사람의 문제만 나오면 돈으로 달래는 달콤한 정책만 내놓았다. 결과는 어땠는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취약 고령층의 일자리를 없앴고 소득불평등도 키웠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고령층의 취업 기회를 막았다. 이들은 비숙련 일자리에 몰리는 고령층의 특성조차 외면했다.

최근 대법원은 육체노동 정년을 65세로 보고 판결했다. 경제·사회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판결이지만 적극적 고령화 정책을 추진할 주체가 없다. 여성가족부엔 여성만 있을 뿐 가족은 없고, 보건복지부는 ‘퍼주는 복지’만 하고,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만 쳐다보고, 교육부는 대학입시에만 매달린다.

적극적 고령화 정책의 공백을 메우려면 정부의 역할을 바꾸고 부처 간 협력을 제고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국민 각자가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핵심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숙련기능을 보강하도록 노동 및 교육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일하는 데 필요한 교육이 국민의 사회적 권리다. 또 때를 놓치고 후회할 것인가? 고령화 정책마저 실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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