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카피 제품' 쏟아져
[ 이수빈 기자 ] 신진디자이너 브랜드 ‘얼킨’을 운영하는 이성동 대표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다 자신의 제품으로 보이는 옷을 발견했다. 얼킨이 작년 가을·겨울 제품으로 내놓은 노란색 니트였다. 이 니트를 배우 이나영 씨가 입어 화제가 되자 디자인을 똑같이 따라한 제품을 SNS 마켓 업자들이 속속 판매하고 있었던 것. 이 대표는 “힘들여 기획하고 디자인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 같아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짝퉁’ K패션 파는 포털·SNS
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한국 신진디자이너 브랜드 패션이 인기를 끌자 이들의 디자인을 베낀 ‘카피 제품’ 판매가 SNS 마켓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브랜드 제품만 베껴 팔던 카피마켓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카피제품 판매는 도매업자들이 주로 중국 광저우 등지에서 제품을 대량 생산해 온 뒤 서울 동대문·온라인 도매몰 등을 통해 소매업자에게 되팔고, 소매업자는 이들 제품을 SNS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신진디자이너 브랜드가 떴다 싶으면 카피 업자들의 표적이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승건 푸쉬버튼 디자이너도 자신이 디자인한 강아지 무늬 셔츠를 배우 공효진 씨가 입고 나와 크게 화제가 된 뒤 비슷한 일을 겪었다. 동대문 의류시장, 온라인몰 등에서 ‘공효진 셔츠’라며 카피 제품을 팔고 있었던 것. 맨투맨 셔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래피커스는 ‘짝퉁’ 그래피커스 티셔츠를 판매하는 업자가 늘어나자 자사 제품에 위조방지 라벨을 붙이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QR코드를 찍으면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라벨이다.
허응수 그래피커스 대표는 “QR코드마저 베껴버리는 업체도 있다고 들었다”며 “코드에 제품 생산처와 판매 장소 정보까지 담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짝퉁제품 묵인하는 포털업체
디자이너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운영업체가 짝퉁 카피제품을 묵인하는 게 카피마켓이 기승을 부리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업체는 자신들은 중개자일 뿐 판매 상품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카피 상품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한 의류브랜드 관계자는 “네이버 스토어팜과 인스타그램 마켓에 카피 제품이 많이 올라오지만 포털 측에 일일이 신고해 봐야 소용없다”며 “짝퉁 제품 판매 덕에 수익을 벌어들이는 중개업체들이 과연 디자인권 침해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디자인 침해,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해도 1년 이상 걸려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게 업계 얘기다. 분기별로 시즌이 바뀌는 패션업계에서는 3개월만 지나도 이미 유행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패션업계를 두고 ‘생선가게’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 디자이너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그는 “소송을 걸어 승소했지만 이미 시즌이 끝난 뒤였다”며 “합의금도 크지 않아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한 디자이너는 “카피 제품을 파는 업자는 웬만한 디자이너보다 훨씬 자금력이 강해 물량만 몇백 배 많이 생산해 놓고 염가로 팔아댄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열심히 고민해 디자인해 봐야 카피업자만 배불려주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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