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명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10년 만의 감독·주연작 선봬
가르시아·쿠퍼 등 화려한 조연
[ 유재혁 기자 ] “이 꽃은 단 하루만 활짝 피었다가 져. 그러니 공들여 보살펴야 해.” “가족도 그런 거예요.”
노인 얼과 전 부인 메리가 나누는 이 대화는 영화 ‘라스트 미션’(원제 The Mule: 마약운반책)의 주제를 함축한다. 원예업자로 평생 가족보다 꽃 가꾸는 일에만 몰두해온 얼에 대한 메리의 책망이 담겨 있다. 얼은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화훼업자들이 주는 상을 받기 위해 딸의 결혼식에조차 불참했으니까. 얼은 뒤늦게 참회하지만 가족을 위해 쏟을 시간이 거의 사라졌다. 그는 물질로나마 보상을 주겠다고 다짐한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라스트 미션’은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랜토리노’ 이후 10년 만에 감독과 주연으로 나선 작품이다. 90세의 이스트우드가 87세 마약 운반원인 레오 샤프의 실화를 연기한 이 영화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실패한 남자가 지난날의 과오를 보상하기 위해 벌이는 사건을 그렸다. 일에 쫓겨 가족과 멀어졌던 이스트우드 감독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질책을 진솔하게 담은 회고록처럼 읽힌다. 단순한 이야기로 일과 가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든 가장에게 울림을 준다. 구십줄에 들어서도 왕성한 창작욕에 불타는 이스트우드 감독에 대한 경외심도 일깨워준다.
영화는 화훼상을 받은 얼이 10여 년 뒤 인터넷 유통 시대에 대처하지 못해 화웨사업에서 쫄딱 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손녀 결혼식이 다가왔는데도 그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이때 누군가로부터 운전을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운전이라면 평생 딱지 한 번 받아본 적 없을 정도로 잘하는 일이다. 모범 운전사로서 그는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고 최고의 마약 운반책이 된다. 후한 보상도 받아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참전용사 단체에 기부금도 쾌척한다. 얼은 소위 ‘로빈후드 놀이’의 유혹에 빠진다. 다른 이들을 위해 선행을 하면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새 일에 익숙해지면서 얼의 짜증난 얼굴은 환하게 펴지고, 노래도 흥얼거리게 된다. 낡은 차는 신형으로, 헙수룩한 옷은 깔끔한 재킷으로 바뀐다. 그러나 경찰 마약단속반의 포위망이 좁혀온다.
얼의 행동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은 다른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다”는 대사처럼 얼은 메리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규칙을 깨고 목숨을 건다.
여기서 마약조직이란 또 다른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전달한다. 멕시코의 마약조직 보스는 얼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규칙 엄수’를 내건 새 보스에게 규칙을 깬 얼은 제거 대상이 된다. 놀랍게도 마약단 킬러가 보증을 서면서 얼은 목숨을 부지한다. 이는 메리가 죽기 전 얼에게 “당신이 돈이 없다 해도 용서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가족은 용서의 미덕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원로배우 다이앤 위스트가 메리 역을,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전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저격수 브래들리 쿠퍼가 마약반원 역을 맡았다. ‘대부3’의 앤디 가르시아가 보스, ‘더 넌’의 호러퀸 타이사 파미가 손녀로 등장한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 영화로 실존 인물의 삶을 탐구하는 명장으로도 기록될 듯싶다. 전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아메리칸 스나이퍼’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체인질링’ 등도 실존 인물의 삶을 그려 호평을 얻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