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춘호 기자 ] 지난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경제고문인 라스 헨드릭 롤러가 중국을 방문했다. 독일 내 5G(5세대) 이동통신망 구축에 따라 수입하려는 화웨이 제품의 스파이 활동 방지를 확약받기 위해서였다. 화웨이제 통신장비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이 30~40% 싸다. 중국은 독일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안이 문제다. 중국이 화웨이 제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스파이 방지 협약을 체결하려는 데 중국은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달 16일 세계 안보회의에서 메르켈 총리가 INF(중거리핵전력)조약에 참여해달라고 했지만 중국이 거부한 마당이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침공할 때부터 시작된 황화론(黃禍論: 아시아인이 유럽문명에 피해를 입힌다는 주장)이다. 125년 전 독일 빌헬름 2세가 러시아 황제에게 유럽문명을 파괴하려 드는 아시아인들에 맞서 단결하자고 한 논리도 황화론이었다. 5G는 현대판 황화론의 소재가 돼버렸다. 중국에 대한 경계와 불신이 5G와 만나 불꽃을 튀긴 것이다.
中 정부 불신이 황화론 일으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해상 실크로드)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폴란드 헝가리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일대일로에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탈리아마저 일대일로에 참여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EU(유럽연합)에서 투명하지도 않고 지속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말리지만 부채에 허덕이는 국가들이 여기에 빨려들고 있다. 이럴수록 독일과 프랑스의 중국 경계감은 더욱 커진다.
이 같은 중국에 대한 경계는 미국에서도 이어진다. 화웨이가 5G 조사를 받은 이후 중국과 아시아의 부상과 관련된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아시아의 미래》를 쓴 파라그 카나는 이 책에서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고 나아가 우리(미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인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 정작 미국인이 가장 경계하는 건 중국의 위선이다. 정확하게는 중국인들의 위선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위선이다. 100년 전 중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지적한 대로다.
지금도 위선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중국이 제조 2025 전략을 계속 추진하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어도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 기술 이전 금지를 법안으로 만든다고 해도 현실화될지 의문이다.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온 게 분명한데도 중국 대변인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한다.
투명하고 위선없는 국가로 가야
이 같은 위선이 나오는 건 중국의 정치·사회 시스템 문제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가 지배하는 국가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선 지배가 심해졌다. AI(인공지능)도 국민들 감시와 통제를 위해 쓰는 나라다. 미국은 5G 기술 또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감시하는 데 쓰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자원의 공정한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10월 한 연설대로 중국 정부는 개혁과 개방을 떠들지만 불투명한 점이 많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환율 조작, 기술이전 강요 등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을 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개혁·개방 국가로 나아간 지 벌써 40년이다. 하지만 아직 진정성이 부족하고 신뢰가 미흡한 국가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이제 투명하고 합리적인 국가로 나아가는 것만이 강국이 아닌 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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