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남성복 매장이 위층에 있는 이유

입력 2019-03-07 18:20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주요 백화점이 봄맞이 세일 준비에 한창이다. 모처럼 새옷을 장만하기 위해 백화점에 가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백화점마다 매장 위치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가전제품은 높은 층에 있고, 여성복 매장은 남성복 매장보다 아래층에 있다. 1층에는 대개 귀금속류와 명품류가 자리 잡고 있다.

백화점 매장과 제품 위치를 정할 때에도 여러 경제원리를 활용한다. 그중 하나가 고객이 백화점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고객이 되도록 여러 매장을 둘러보게 함으로써 각 브랜드의 노출도를 높여 추가적인 매출 신장을 꾀하는 것이다.

냉장고, 세탁기처럼 값비싼 가전제품 매장엔 보통 사전에 구매계획을 세운 사람이 많이 찾는다. 이들에게 추가적인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층을 거쳐 전자제품 매장에 갈 수 있도록 동선을 짜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향수, 구두, 가방, 주얼리 등은 가격탄력성이 높은 제품이다. 이처럼 가격 변화에 민감한 제품은 1층에 배치해 백화점을 찾은 모든 이에게 노출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

여성복 매장이 남성복 매장보다 아래층에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여성은 옷을 사러 백화점에 더 자주 간다. 그런데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남성복 매장보다 먼저 들르게 배치하는 이유다. 남성복은 정말 필요한 시점에 사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부들이 모처럼 남편 양복을 사러 백화점을 찾았을 때도 여성복 코너를 지나치게 만들어야 추가 매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백화점 식품 매장의 진열 순서도 철저히 계산돼 있다. 식품 코너의 가장 안쪽에 있는 품목은 정육, 생선류 등이다. 사전에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품목이다. 모처럼 가족끼리 삼겹살 파티를 할지, 등심구이를 먹을지 결정하고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품목은 구매를 결정하고 방문하는 고객에게 필수재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들 제품은 매장 가장 뒤편에 배치하고 매장 앞쪽에는 가격도 저렴하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즐기는 라면, 과자, 빵, 카레 등을 배치한다. 사기로 마음먹은 품목을 구매한 뒤 계산하러 나오면서 자주 즐기는 라면, 빵, 카레 등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백화점은 달라도 공간 배치는 다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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