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데뷔 30년, 영화 데뷔 24년을 맞은 한석규는 왜 연기를 하게됐을까.
배우 한석규가 영화 '우상'으로 인터뷰에 나섰다. 믿고보는 국민배우로 수년째 군림하는 한석규는 "16살, 윤복희 선생님의 공연을 보고 처음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며 "인생은 이렇게 반응의 연속인 것 같다"고 털어 놓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한석규는 1990년 KBS 성우 22기로 데뷔, 이후 연기자로 전향해 영화 '접속', '초록물고기', '넘버3', '쉬리' 등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데뷔 30년차다.
한석규는 "저도 20대, 30대 땐 연기는 반응하는 것보다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뭘 해도 잘됐고, 자신감도 있었다. 제가 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런데 이게 안되는게 있더라. 인생이 그런거지 않나. 그래서 '아, 내가 결국은 액션을 한다 생각했는데, 리액션을 하면서 사는구나' 싶었다"고 연륜을 통해 깨달은 결론을 털어 놓았다.
한석규는 또 "제가 연기라는 일을 하게된 것도 윤복희 선생님의 공연에 대한 반응"이라며 "16살에 윤복희 선생님이 나왔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초연을 봤는데, 근사하고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연기자를 꿈꾸게된 순간을 소개했다.
일찌감치 영화, 팝 등을 접하며 배우라는 꿈을 꿀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형님들의 영향이 컸다"며 "'너희는 비틀즈 듣니? 그거 끄고 레드제플린 틀어봐' 이런 식으로 잘난척도 했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우상'에 대해서도 "이상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된 남자와 누구보다 소중했던 아들을 뺑소니 사고로 잃게 된 남자, 그리고 사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한공주'로 2014년 감독상을 휩쓸었던 이수진 감독의 신작이다.
청렴한 도덕성으로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았던 도의원 구명회 역엔 한석규가 캐스팅됐다. 한석규는 아들의 교통사고 은폐 사실을 알게되고, 아들을 자수시키는 캐릭터다.
탁월한 연기력으로 칭송받는 한석규는 '우상'에서도 극의 중심을 잡는다. 아들을 감옥에 보낸 후 뺑소니와 관련된 논란을 모두 벗어내는 줄 알았던 구명회가 새롭게 나타나는 상황에 흔들리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선택을 하는 인물로 돌변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극을 이끌었다. 선악의 경계를 오가며 인가의 다양한 얼굴을 선보여왔던 한석규는 '우상' 구명회를 통해 또 한 번 대표작을 경신하리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한석규는 구명회에 대해 "그 인물만 놓고 보면 어떻게 바보스러운 반응만 하면서 끝까지 달려가나 싶다"며 "현명한 반응이라면 멈췄을 텐데, 죽는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비열한 선택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서 제대로 된 건강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다들 병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설정을 통해 이수진이란 창작자가 어떤 이야기를 할 지에 대해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며 "시나리오 자체가 굉장히 촘촘하고 치밀해서 여러 캐릭터들에 공감하며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시나리오 보고 작품 선택하는 배우"로 유명한 한석규가 "이수진 감독의 세번째 작품엔 무조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석규는 이어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수진 감독에게 '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라'고 재촉했다"며 "이 재능이 너무 아깝다. '한공주'에서 '우상'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5년 동안 평생 해도 10편이나 하려나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석규는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도 "전 대본을 봐야하는 사람이다"면서 출연설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수진 감독에 대해선 달랐다.
한석규는 "워낙 대본 봐야하는 놈으로 소문이 났다"며 "전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수진 감독은 대본도 안보고 할 것"이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또 "'우상'도 시나리오가 정말 탄탄했다"며 "'초록물고기'를 할 때 이창동 감독님의 시나리오가 정말 좋아서 이걸 프린터해서 관객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근래엔 '우상'이 그랬다"고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수진 감독의 영화관이 정말 좋다"며 "'한공주'를 보며 알아차렸지만, 이 사람은 '넌 영화 왜하니?'이렇게 물어보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은 사람이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창작욕이 불타오를 시기가 있는데, 이수진 감독에게 그래서 빨리 많이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편 '우상'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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