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신냉전의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입력 2019-03-10 17:11  

자유주의연합의 일원으로 美·日 지원 확보
對中 의존도는 줄여 경제보복 가능성 차단
갈팡질팡 끌려다니는 외교에서 벗어나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근년에 세계정세에서 나온 변화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체주의 세력의 소생이다. 2차 대전에서 추축국들이 패망하면서, 파시즘 세력이 소멸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 덕분에 독일과의 싸움에서 이긴 소련이 강성해지자,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에 더 큰 위협이 됐다.

공산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의 냉전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끝났다. 당시 소련이 드러낸 공산주의 체제의 빈약하고 흉측한 모습은 자유주의의 영원한 번창을 약속하는 듯했다.

그러나 전체주의 체제가 무너지면 곧바로 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서서 번창하리라는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명목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했지만, 실제로는 비밀경찰이 지배하는 체제로 복귀했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채택했지만,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남았다. 자유민주주의 전통이 없고 재산권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선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가 이내 설 수 없다는 교훈을 자유주의자들은 되새겨야 했다.

다른 편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렇게 커진 경제는 군사력의 강화를 가능하게 해서 두 나라의 군사적 위협은 점점 커졌다. 이제 두 나라가 연합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국가들과 맞선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이 대결은 현재 두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다. 한반도에선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이 위기를 불렀다. 이 위기의 본질은 중국이 북한을 앞세워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세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을 지원한 이래 자생력이 없는 북한 정권을 지탱해왔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기술과 자원을 제공했다.

더욱 위험한 곳은 유럽 동부니, 러시아의 팽창 정책으로 국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를 분리시키려 시도했고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아조프해를 봉쇄했다. 러시아는 방어 능력이 가장 약한 벨라루스를 다시 병합하려 한다. 발틱 3국에 대한 위협도 이어진다. 발틱해를 경유하는 가스관을 추가로 건설해 유럽연합(EU)을 분열시키려 한다.

이처럼 득세하는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는 자유주의 세력은 전열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정이다. 이해가 다른 나라들이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는 전열을 갖추려면, 그런 연합의 지도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힘과 더불어 도덕적 권위도 지녀야 한다. 그러나 근년에 미국은 도덕적 권위를 크게 잃었다. 민중주의를 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않는 정책을 펴왔다. 특히 자신의 난잡한 행태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여겨지는 러시아에 대해선 비굴한 유화 정책을 펴왔다.

걱정스럽게도, 미국 대통령이 바뀐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소련에 대해 모든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렸다. 무엇보다도 소련이 워낙 사악한 체제였으므로 자유주의 세력은 큰 도덕적 권위를 누렸다. 이제 러시아의 군사력은 여전히 위협적인데,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 됐다. 반면에 유럽은 외교적으로 분열되고 군사적으로는 난쟁이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냉전과 달리 ‘신냉전’에선 전선을 설정하기가 훨씬 어렵다.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 세력은 전체주의 세력과 교섭이 적어서 소련이나 중공을 봉쇄하는 전략이 가능했다. 이제 세계는 긴밀히 연결돼 있어 정치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대결하는 상황에서도 경제적으로는 협력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우리로선 적절한 전략을 세우기 어렵고 추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도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자유주의 연합의 일원임을 분명히 해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확보하고 북한과 중국이 오판할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여 중국의 무도한 행태로부터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애써야 한다. 현 정권은 이런 전략과 대척적인 전략을 줄곧 추구해 왔다. 매사에 갈팡질팡하고 중국과 북한에 늘 끌려다니는 우리 외교는 이처럼 비합리적 전략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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