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인사까지 간섭하는 관치금융으론 '금융 선진국' 안 되죠

입력 2019-03-11 09:02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사설] "금융당국 거슬러서 좋을 것 없다"는 금융계 자조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퇴진을 놓고 금융계에 뒷말이 분분하다. 3연임을 앞뒀던 함 행장이 금융감독원 압박 때문에 이를 포기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하나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앞서 함 행장에 대해 반대 의사를 전했다. 부원장보 3명이 임원추천위원을 겸했던 하나금융 사외이사 3명을 만나 인사에 개입한 것이다. 금감원은 “함 행장이 채용비리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어 ‘법률 리스크’가 있었다”고 개입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무죄든 유죄가 되든, 민간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무죄 추정 원칙’도 있다. 은행 지배구조에 대한 점검이라고 해도 행장 선임 이틀 전 직접적 인사 개입은 과도한 감독권 행사였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의아한 것은 하나금융 쪽 반응이다. 압박 과정이 드러났는데도 ‘함 행장의 용퇴’를 강조하는 게 더 미심쩍다. “금융당국과 척지고,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목소리가 하나은행만의 자조(自嘲)가 아닌 것이다. 덩치만 커진 국내 은행들이 처한 현실이다. 함 행장이나 하나은행이 잘잘못을 떠나 몸을 낮추며 말을 아끼는 것은 후환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4월, 3년 만에 부활하는 금감원의 ‘금융회사 종합검사’에 대해 한경이 우려를 표시했던 것도 그래서다.

금감원도, 금융위원회도 확 바뀌어야 한다. 핀테크 시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금융이 앞서가야 제조업의 발전도, 신성장 산업 혁신도 가능해진다. 감독당국이 ‘골목대장’에서 벗어나 금융회사가 경쟁력을 키우도록 지원하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제대로 뛰게 해야 한다. 언제까지 금리와 카드 수수료나 간섭하고, 재산권 침해 논란까지 무릅쓰며 개인빚 탕감이나 재촉할 것인가. 그러면서 민간의 인사에 개입해 관치 논란이나 자초할 텐가. 선진금융의 길이 멀다. <한국경제신문 3월4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금융은 공적 기능이 강한 특성상
정부 규제 불가피한 측면 있지만
'자율 경영' 침해하면 금융 못 커

경제·산업의 여러 부문이 다 그렇지만, 금융은 특히나 ‘민간 자율’과 ‘정부의 규제 감독’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영역이다. 경제 선진국들이 모두 금융에 대해 민간 자율과 시장 기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고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금융을 ‘100% 민간 영역’으로 두는 나라도 없다. 금융이 갖는 강한 공적 기능 때문이다. 은행이 대표적이다. 국내 시중은행의 선두그룹은 이제 자산 규모가 50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자산이 축적되기까지, 쉽게 말해 금융소비자들이 은행에 자신의 금융자산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인가. 그 신뢰의 바탕은 은행들 뒤에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제도의 운용, IMF 외환위기 때처럼 “설사 은행이 부도 나도 정부가 어떻게 해 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어 은행제도가 운용되는 것이다. 정부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면허증’을 발급해주는 게 은행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업에 대한 정부의 감시 감독이 무작정 합리화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야 한다. 설립 심사와 자산운용에서 규정준수 여부에 대한 엄격한 검사는 필수적이지만, 경영에는 자율을 보장해줘야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경제 강국들, 금융선진국들의 앞선 사례에서 확인되는 등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시중 은행의 경우 ‘민영 회사’라는 측면도 중요하다. 민간의 경영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되는 게 바람직하다.

산업으로서 금융과 관련해 오래된 논쟁점이 있다. 한국의 금융발전사는 ‘관치’를 줄여온 과정이었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예전에는 예금과 대출의 금리부터, 심지어 은행의 점포 숫자와 신규 지점의 개설 요건까지 정부가 일일이 정해줬다. 은행 경영에 잦은 개입은 물론 은행장은 퇴직 재무 관료가 낙하산으로 가는 게 당연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방과 개혁, 국제화의 물결에 맞춰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관치의 검은 그림자는 곳곳에 남아 있다. 규제 법률과 감독 규정만이 아니다. ‘디테일 속의 악마’처럼 감독권, 검사권이라는 통상적인 행정 속에도 관치는 엄존한다. 그래서 “금융 감독당국과 싸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당장은 논리적으로 이겨낸다 해도 군기 잡기식 보복·표적 검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보신책이다. 행정이란, 정부의 힘이란 명문화된 법과 규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갑을의 관계라고도 하지 않나.

이를 한국만의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국 같은 데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월가에서도 “Treasury(미국 재무부)에, Fed(미국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물론 Fed에 맞서지 말라는 것의 의미는 다소 다르다.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 반하지 말라는 경우로 더 쓰이지만, 어디서나 규제당국의 힘은 무섭다. 문제는 이 권력이 올바르게, 합법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한국의 금융이 뒤처졌다는 자성과 비판을 많이 한다. 금융업계의 문제인가. 감독당국의 태도 때문인가. 금융업계가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무르면 다른 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게 된다. ‘금융은 산업의 혈맥’이라고 한다. 이 혈맥이 건전해야 경제라는 생명체가 싱싱하고 활기 있게 성장할 것 아닌가. 그래서 금융감독 당국의 선진화가 중요하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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