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의 ‘북한 뉴스 대놓고 읽기’] (6) 57년째 외치는 허무한 구호 “흰 쌀밥에 고깃국”

입력 2019-03-11 11:41   수정 2019-03-11 13:10

1962년 김일성이 처음 사용
“흰 쌀밥 고깃국 먹여 주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 주겠다”
2019년 손자 김정은도 똑같은 말
강산이 여섯 번 변해도 ‘메뉴 변경’ 없어




[들어가며] 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모두가 이팝(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김일성 북한 주석, 1962년 천리마 운동 당시)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며 이것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조선(북한) 혁명가들의 이상이고 투쟁목표입니다. 오늘 우리 당에 있어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습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19년 3월 6일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서한 중에서)

57년이 지났다. 강산이 여섯 번은 변했을 세월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3대 독재가 이어질 동안, 주민들에게 경제 발전을 홍보하는 구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메뉴조차 안 바뀌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이다.


이 표현은 195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해 1962년 10월 김일성이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장식으로 처음 썼다. 당시 주민들을 대중 운동에 적극 끌어들이고, 김일성 우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 죽으면서 “이팝에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여줄 것”이라 믿는 주민들은 사실상 없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1월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야 한다’는 수령님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민들이 강냉이(옥수수) 밥을 먹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을 때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을 비웃었다 한다. 그의 사치가 극에 달했단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21세기 정상국가의 지도자임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케케묵은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대북제재 완화에 실패하면서 내부 동요가 심했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김일성의 추억’을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 집권 때는 구 소련의 원조와 남한 대비 앞선 중공업 기술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배급제가 꽤 원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흰 쌀밥에 고깃국”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정권이 내세우는 정치 구호가 얼마나 허망한지 잘 보여준다. 북한의 핵 개발이 주민들의 경제에 도움이 된 건 없었다. 대북제재는 돈줄을 조였고, 식량 사정은 나아질 줄 모른다. 21세기인 지금, 김정은이 외치는 저 구호를 믿는 북한 주민이 몇 명이나 될까.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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