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서양미술이 한국에 들어온 근대미술 도입기에 대구는 국내 화단의 변방에서 큰 역할을 했다.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과 사실주의 화가 이쾌대(1913~1965) 같은 뛰어난 작가들이 위상을 높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강우문 김진태 박광호 서석규 서창환 이원희 노태웅 박병영 등 많은 화가가 화단을 빛냈다.
선배들의 향토적 구상화풍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신(新)구상 경향을 구사하는 노태웅 화백(63)이 1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한경갤러리 개관 7주년 기념전에 초대된 노 화백은 정년을 10년 앞둔 2012년 교직(대구예술대)을 떠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고독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남 화단에서 복고풍 구상화로 주목받아온 그는 서른한 살에 첫 개인전을 열어 단번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만들고자 무던히 애쓰던 그는 이제 경북 칠곡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붙들고 자연의 숨소리를 붓질하는 노장부가 됐다. 기차역, 판자촌, 농경지, 어촌의 부둣가, 폐광 등을 차분하게 화폭에 품어온 그는 오랜 기간 ‘풍경의 마술사’란 평가를 받았다.
노 화백은 이번 전시회 주제를 작품 제목에서 따온 ‘다시 마음이다’로 정하고 지난해 제주와 설악산, 남해, 동해 등을 찾아 사생한 대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낸 근작 30여 점을 펼쳐 보인다.
노 화백은 “세상의 번잡스러움이나 그늘지고 어두운 것을 정화시켜 현대인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는 게 최고의 화목(畵目)”이라고 했다. 그는 기차역과 한적한 어촌, 눈 쌓인 마을, 해변의 운치 등 일상의 언저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풍경을 날것처럼 화폭에 옮긴다.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을 시각화하는 현대미술의 관념을 최소화하면서도 잡다한 일상의 번잡함을 스펀지로 빨아들이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화면은 한낮의 땡볕을 가득 머금은 듯 눈부시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뒤덮여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노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범한 풍경에 자연의 빛을 깊숙이 끌어들여 색채 리듬과 생동감을 살려냈다”며 “사색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풍경이자 정화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풍경이지만 작업 기법이 독특하다. 초기 작업부터 캔버스에 모래를 바르고 그림을 그린다. 모래가 화면 구석구석에 짓이겨지고 물감을 쳐올린 화폭은 까칠하게 요동친다. 젊은 시절 번들번들 기름기가 많은 유화 물감이 느끼해 모래를 재료로 선택했다. 그것이 더 현대인의 삶을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친 모래 알갱이가 선의 형태보다 면과 색채로 융화되며 화면은 따뜻함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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