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1일(현지시간) 미 연방정부 사상 역대 최고액인 총액 4조7000억달러(약 5330조원) 규모의 2020 회계연도(2019년 10월1일~2020년 9월30일)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국방과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크게 늘리고 대외원조·복지 등 비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한 내용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 더 나은 미국을 위한 예산'으로 지칭된 이번 예산안은 국방예산을 지난해보다 5% 늘려 7500억 달러로 증액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에 추가로 86억달러를 배정한 것이 특징이다.
늘어난 국방예산은 우주군 창설과 국경경비 강화, 재향군인 연기금 증액, 주둔군 기금 확충 등에 따른 것이다. 국방예산 증액분은 애초 국방부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추가로 배정한 국경장벽 예산은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의회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예고한 대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월에 또 다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재연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10월에 시작하는 예산 회계연도에 앞서 오는 9월까지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국이 다시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를 낮게 판단하는 복지, 대외원조, 환경 등 비국방 부문 재량예산이 줄줄이 삭감됐다. 대외원조가 130억 달러 삭감되면서 국무부 예산이 23%나 줄었다. 부처별 예산에서 환경보호청이 31%, 교통부가 22%, 주택도시개발부가 16% 각각 삭감됨으로써 환경·인프라 투자 관련 예산이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메디케어(고령자 의료지원),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에서 향후 10년간 2400억~8400억달러 줄여나가는 방안이 제시됐다. 메디케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지원책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거지원, 저소득층 영양지원(푸드 스탬프), 의료보험 등 각종 복지혜택에서 줄인 예산의 규모가 32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복지정책 중에도 오피오이드(약물) 남용대책, 새로운 학교선택 프로그램 등 트럼프 대통령이 공들여 추진해온 사업은 예산이 증액됐다.
미 언론은 국방·국경장벽 예산 증액과 복지예산 감축이 2020년 대선을 앞둔 레이스에서 향후 1년6개월 넘게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갈 것으로 점쳤다. 이번 예산안은 미국 경제가 내년 3.1%의 안정적 성장률을 유지한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초당파 성향 의회예산국은 감세 효과가 퇴색하면서 내년 성장률이 1.7%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해 트럼프 행정부의 성장 기반 예산안 편성과는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2020 회계연도 예산안은 약 1조1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으로 미 언론은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에는 총액 4조4000억 달러의 예산안을 제출한 바 있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현재 22조달러 규모이다. 러스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대행은 이날 예산안에 대해 "납세자를 최우선으로 해 입안한 안"이라며 "워싱턴의 무분별한 지출을 억제하고 재정 건전성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야무스(민주) 하원 예산위원장은 "트럼프 예산안은 예상했던 것만큼 위험하다"면서 "필수적인 예산 삭감으로 우리나라를 덜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