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산하기관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물품을 살 수 없도록 한 서울시의회 조례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12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홍성룡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서울시 일본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과 ‘서울시교육청 일본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은 각각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와 교육위원회에서 심사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교육위원회에서는 안건 상정 찬반과 관련된 토론조차 생략됐다.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기 전 거치는 ‘예비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영민 의원은 “서울시가 여태껏 일본 전범기업과 수의계약을 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 같은 조례안을 제정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상위법에 관련된 법적 근거도 없다”며 “행자위 위원들 의견을 모은 결과, 일단 상정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홍 의원에게는 조례안 제정이 아닌, 건의서 형식으로 제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고 했다. 이번 조례안을 둘러싸고 서울시의회에서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령으로까지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홍 의원이 조례안을 발의했을 때는 서울시의원 정원의 27%인 30명이 찬성했었다. 행자위의 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홍 의원에게는 여러 루트를 통해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시기도 내용도 부적절하기 때문에 애초에 상임위에 상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고 했다. 교육위 소속의 여명 자유한국당 시의원은 “개인의 신념은 존중하지만 서울시민들을 대표하는 서울시의회에서 시대착오적이고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안을 조례로 제정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집행부인 서울시뿐만 아니라 외교부 등 정부 부처까지 이번 조례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은 “조례안을 발의했을 때 각종 높은 분들에게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고 토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로부터 우려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는 사실을 홍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의원은 “싸움을 시킨 일본은 빠져버리고 외교부,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의회, 우리끼리 상처만 남았다. 우리가 또 일본에 당했다”며 “다음 회기 때 보완하여 통과되도록 세심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조례안에 등장하는 일본 전범기업이란 2012년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299곳 중 현존하는 284곳을 가리킨다.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가와사키중공업, 미쓰비시, 스미토모, 기린 등 일본 대기업 상당수가 포함된다. 앞서 홍 의원은 지난해 8월 서울시와 각 구청 등 산하기관, 서울시교육청, 공립학교 등에 일본산 제품의 사용 현황 전수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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