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명쾌한 설정이지만 얽히고 설킨 상징과 은유로 혼란스러워진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강약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배우들의 연기력이 흡력있게 흘러가니 오히려 어디에 집중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문법으로 내용을 전개하는데, 그 과정마저 친절하지 않다. 영화 '우상'이 어려운 이유다.
'우상'의 시작은 뺑소니 교통사고다. 구명회(한석규 분)는 가해자의 아빠다. 핵폐기물 관련 이슈를 이용해 학연과 지연을 넘어 유력한 도지사 후보가 된 도의원 구명회의 앞길에 아들이 태클을 건다. 그가 출장을 간 사이에 그의 명의로 된 외제차를 몰고 나가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사람을 죽인 것.
에어컨 설비를 하며 먹고 살던 유중식(설경구 분)은 뺑소니 피해자의 아빠다. 지체 장애를 있는 아들을 위해 자위까지 해줬을 만큼 자식을 향한 유중식의 애정은 넘쳐났다. 일할 때는 물론 성매매를 할 때에도 함께였던 아들을 위해 마시지샵에서 일하던 조선족 여성과 짝까지 맺어줬지만 신혼여행지 인근 도로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한국에 오기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다했고, 마사지 샵에서 일하며 자신에게 한국 국적을 줄 수 있는 남자를 기다렸던 조선족 최련화(천우희 분)는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 상태에서 신혼여행지에서 남편을 잃었다. 정신적으로 조금 모자라도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기에 빨리 혼인신고를 하길 바랐던 최련화는 남편의 죽음 이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우상'은 뺑소니 사건 이후 악연으로 얽히게 된 세 사람을 통해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욕망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구명회, 자식이 존재 이유였던 유중식, 그리고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할퀴며 살아왔던 최련화까지 누구에게 치중하지 않고 3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유하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는 이수진 감독은 관객들이 알아챌 수 있도록 곳곳에 상징과 암시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결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유중식의 머리가 노란 이유, 마지막 엔딩에 담긴 의미까지 관객 스스로 사유해서 의미를 유치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간담회와 인터뷰를 통해 감독, 배우들의 설명이 덧붙여진 후에야 "아, 그게 그런 설정이었구나" 깨닫을 수 있을 정도다.
감독은 물론 출연하는 배우들까지 "우리 영화가 쉽진 않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들은 입을 모아 "세 명의 인물을 한꺼번에 보지 말고, 한 명의 인물에 본다면 보다 쉬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평범한 관객이라면 한 명의 인물에만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누구 하나만 떼 놓고 볼 수 없는 것.
한석규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전달하는게 우리의 업"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상'과 이수진 감독에겐 애정을 보였을 뿐 아니라 "다음 작품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했다. 관객들도 한석규와 같이 '우상'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20일 개봉. 러닝타임 144분. 15세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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