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총 시즌이다. 기업마다 주요 현안을 챙겨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특히 올해는 고심이 깊다. 주총에서 배당을 늘리라는 전방위적 압박 탓이다. 국민연금부터 그렇다. 고배당을 위해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공개 망신 내지 벌을 주겠다고 공언한 참이다.
정부가 일자리 부족이 심각하다며 투자 확대를 촉구하는 마당에 국민연금은 경영 간섭까지 운운하며 배당 확대를 압박하는 이상한 국면이다.
투자도 배당도 늘리라니…
기본적으로 투자와 배당은 대체관계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다면야 또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글로벌 간판기업들마저 실적이 부진하다. 상장기업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4년여 만에 감소했다. 올해는 아예 많은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이 5년 만에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곳도 예외가 아니다. 자금 여력이 초비상인데 투자도 늘리고 배당도 늘리라고 상충된 요구를 하니 기업들은 한숨만 나온다.
ISS 같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주총을 앞두고 현대차에 대한 헤지펀드의 고배당 요구에 반대하는 권고 의견을 제시한 것은 주목된다. 현대차가 수소차 전기차 등에 앞으로 5년간 45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연금은 시급한 투자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배당 확대만 내세운다. 똑같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의결권 행사 지침)에 임하는 양쪽의 행보가 너무 대조된다.
사실 고배당은 우량기업을 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다. 글로벌 주가지수인 MSCI 지수에 편입된 국가를 기준으로 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눠 산출한 배당수익률을 비교해보자. 한국은 2014년 1.29%에서 2018년 2.44%로 높아졌다. 실제 배당금 총액도 급증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2.13%)보다 높고 독일(2.45%)과 비슷하다. 일본(2.57%)과도 별 차이가 없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 중에는 영국(4.99%) 등 선진국 외에 1위인 루마니아(10.89%), 오만(6.92%) 그리고 그리스(3.58%) 아르헨티나(2.73%)처럼 외환위기를 겪은 곳도 있다. 물론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파키스탄(6.63%) 케냐(5.38%) 태국(3.13%) 같은 나라는 또 어떤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나
사실 배당은 저성장에 대한 보상 성격이 짙다. 고성장 기업은 주가가 오르므로 일반투자자든 기관투자가든 배당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 기업 경영에 간섭할 목적이 아닌 투자자라면 이걸로 충분하다. 문제는 더 이상 고성장이 안 될 때다. 주식의 매매차익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금을 주게 된다. 과거 고성장기를 지났던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이 고배당에 나섰던 이유다.
기업이 한정된 자금력을 갖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것인지, 현재를 위한 배당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지속경영을 판가름짓는 중요한 경영 판단이다. 정부는 물론 주인이 아니라 대리인인 국민연금이 개입할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투자와 배당을 같이 늘리라는 것은 ‘구성의 오류’를 넘어 정책 능력과 일관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혹여라도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점에 함몰돼 정작 현금성 자산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황금알을 꺼내겠다며 자꾸 거위의 배를 가르려 든다. 지금 곳간을 털어먹으면 장차는 어쩔 것인가. 무엇보다 기업의 존속이 최우선 전제이자 관건이다. 누가 미래를 보장하나.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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