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현금은 정부 견제수단…사용권리 포기 말아야

입력 2019-03-14 17:53  

현금 없는 사회


[ 유재혁 기자 ] 미국 뉴욕 시그니처은행의 스콧 셰이 회장은 ‘현금 폐지는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한다.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면 정부와 기업이 합세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업활동을 신속히 매장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2010년 미국 정부가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카드 결제를 할 수 없도록 하면서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의 온라인 도박 영업활동이 멈춰버린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비만 예방책으로 살을 찌울 만한 음식을 살 때 카드가 승인되지 않도록 결정할 수도 있다. 권력은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남용될 수 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전자화폐가 현금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는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장밋빛 환상의 실체를 파헤치고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현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책은 스웨덴, 프랑스, 터키, 중국 등 각국의 현금 폐지 정책을 소개한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고액권인 1000크로나 지폐를 없앴고 프랑스는 1000유로 이상의 현금 결제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4년 12월 기준 세계 모바일 화폐 계좌 3억 개 중 절반에 가까운 1억4600만 개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등록한 계정이었다. 유엔 회원국, 개발도상국 정부, 비정부기구, 자선단체, 기업들이 이들에게 휴대폰 결제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사용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금이 사라지면 은행은 온갖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전자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해서다. 가령 스웨덴에서 휴대폰 결제 앱(응용프로그램)의 개인 이용자는 수수료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기업은 건당 1.5~2.0크로나의 거래수수료를 낸다. 은행이 그나마 합당한 수준으로 수수료를 유지하는 이유는 우리가 언제든 돈을 인출해 보관할 수 있으며 은행을 이용하고 거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로스 클라크 지음, 이정미 옮김, 시그마북스, 236쪽, 1만4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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