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평전
[ 윤정현 기자 ] “난관에 빠지거나 거대한 벽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자신을 내던져 한계를 돌파하려는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 아닐까요.”
최근 《윤봉길 평전》을 출간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사진)은 13일 도산 안창호, 토정 이지함에 이어 세 번째 인물 평전의 주인공으로 윤봉길 의사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을 축하하는 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던졌다. 그의 의거로 일본의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등이 즉사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일본에서 총살됐다. 당시 만 스물넷의 청년이었다.
윤 의사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 전 장관은 예산중학교 재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윤 의사의 거사일을 예산군민의 날로 지정하자는 서명운동도 벌였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군민의 날이 된 매년 4월 29일은 예산 안팎에서 3만 명 정도가 모이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윤 의사의 상하이 거사가 김구 선생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윤 의사는 그것을 수행한 인물일 뿐’이라는 평가에 대한 반박이다. 이 전 장관은 “윤 의사는 상하이 망명 이전에도 고향에서 야학 활동을 하고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현장 운동가로 활약했다”며 “거사 당시 어떤 조직에 속하지 않았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원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거사는 윤 의사 자신의 결단과 선택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책에서 독립운동가 김광이 쓴 중국어판 ‘윤봉길전’ 등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도 제시한다.
상하이 독립운동 진영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화선이 된 거사의 의미도 풀어낸다. 이 전 장관은 “윤 의사의 거사를 명분으로 김구 선생이 이끄는 상하이 임시정부는 장제스 정부의 든든한 재정 지원을 받게 됐다”며 “윤 의사를 행동대원 정도로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며 그렇다고 김구 선생의 항일투쟁 정신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임에도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기존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집필은 단 3개월 만에 끝냈다. 이 전 장관은 조선 후기의 문신 삼산 이태중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책을 구상 중이다.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이 사회를 답답하게 합니다. 조선의 청백리로 칭송받은 그의 삶을 통해 오늘을 돌아보려 합니다.”(동녘, 332쪽, 1만6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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