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혁신과 소비자

입력 2019-03-14 17:55  

권영설 논설위원


[ 권영설 기자 ] 혁신은 진부하게 느껴지는 단어다. 툭하면 ‘혁신위원회’를 만드는 정치권처럼 무엇인가 새 시도를 할 때마다 갖다 붙인 탓일 것이다.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번역어인 혁신은 원래 지금 없는 상품, 서비스, 기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혁신의 결과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 다시 마차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터넷 경매가 아니라면 아무리 넓은 땅이 있어도 동시에 수만 명이 참여하는 경매시장을 열 수 있겠나.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에 가야 했던 때가 불과 수십 년 전이다. 오늘날의 풍요는 20세기와 함께 활짝 핀 혁신의 결과다.

새 시대 열어가는 담대한 도전

문제는 혁신이 기존 사업자의 반발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마차업자들이 그랬고, 우버 등장에 택시업자들이 거세게 저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탓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논란의 와중에 소비자들은 외면당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인상적인 사건은 넷플릭스가 만든 영화는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쟁이다. 극장에서 거의 상영되지 않는 TV용이란 이유에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쟁을 촉발한 주인공이 한때 혁신의 상징 인물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영화제들도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극장 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넷플릭스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다.

분명한 건 모든 혁신은 소비자의 선택을 기대하면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들고나온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 혁신은 성공한다. 그러니 소비자 편익(consumer benefit)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돼야 옳다.

기득권이 반발한다고, 정부가 막는다고 대세가 바뀌는 게 아니다. 영세서점을 살리겠다고 온라인 서점을 폐쇄할 수 없고, 전자상거래를 금지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마차꾼도 먹고 살아야지 하던 사람들이 결국 자동차를 타게 되면서 시장은 바뀌어 버린다.

기존 사업 파괴란 관점 버려야

특히 최근의 문제는 혁신이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일반적인 용어가 된 ‘아마존되다(amazoned)’는 아마존이 진출하는 업종마다 기존 사업자가 망한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난감 왕국 토이저러스가 도산하고 전통의 시어스와 메이시스 백화점의 점포들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유통업체들엔 공포지만 소비자로 눈을 돌려보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 24시간 주문이 가능하고,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제시해주고, 게다가 싸고!

혁신에 관한 한 정부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존 사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하기 일쑤다. 국내에서 우버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콜버스가 초기 시장 진입에 실패하고, 카풀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엉뚱한 서비스로 변질된 데는 이런 곡절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와 시장이 답이 돼야 한다. 가장 최근의 혁신 이슈인 공유경제를 예로 들면 이유는 명백해진다. 공유경제는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고, 소비자가 동시에 공급자가 되는 모델이다. 우버는 택시 한 대 없이도 운전자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도는 우버와 자체 모델인 ‘올라’를 통해 2017년에만 1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을 정도다. “은퇴하면 우버 드라이버나 돼야지” 하는 중년의 희망은 우리나라에선 통하지 않는다. 똘똘한 혁신가들이 미국이나 중국으로 떠나겠다고 해도 잡을 명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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