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적의 약물' 항생제 쏟아부은 죄…내성이란 毒 키웠다

입력 2019-03-14 17:57   수정 2019-06-12 00:02

빅 치킨

메린 매케나 지음 / 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 / 512쪽│2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1948년 12월 25일 미국 뉴욕주 펄리버에 있는 레덜리연구소의 실험실. 토머스 주크스 박사는 부화한 지 25일째인 닭들을 한 마리씩 저울에 올렸다. 항생물질 찌꺼기를 투여한 닭의 무게는 277g. 그렇지 않은 대조군의 2.5배나 됐다. 결정성 비타민을 먹인 닭보다 3분의 1, 값비싼 간 추출물을 먹인 닭보다도 4분의 1이 더 무거웠다.

닭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늘린 것은 오레오마이신을 제조하는 기본 배양액 60g이었다. 빵 두 조각, 달걀 한 개 값에 불과한 소량의 곤죽이 이후 농업의 전체 구조와 식생활을 바꿔놓았다. 소량의 오레오마이신이 돼지, 닭, 오리 등 가축의 질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비약적인 성장촉진 효과까지 안겨준 덕분이다. 가축을 키우는 농민들은 열광했고, 레덜리연구소의 모기업은 큰돈을 벌었다.

주크스의 연구는 그저 되는 대로 마당에서 놓아먹이던 닭을 시장의 거대상품으로 바꿔놓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닭을 비롯한 식용가금은 달걀 생산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합성 비타민 보충제와 주크스의 항생제 처방 덕분에 닭의 위상이 달라졌다. 알을 낳는 산란계뿐만 아니라 육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1959년 코넬대의 로이트 베이커가 지금은 치킨 너깃이라고 불리는 치킨스틱을 개발하자 닭의 과잉공급 문제도 해결됐다. 밋밋했던 닭이 먹기 쉽고 매력적인 먹거리가 된 것이다. 그 결과 1960년 미국인 1인당 28파운드였던 닭고기 소비량이 2016년에는 92파운드로 늘어났고, 공장형 집중사육을 특징으로 하는 거대 가금기업이 탄생했다.

《빅 치킨(Big Chicken)》은 이처럼 항생제 덕분에 가금산업이 어떻게 비약적으로 성장해왔고, 이로 인해 빚어진 항생제 내성의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여기서 ‘빅 치킨’은 거대 가금기업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그 기업들이 항생제를 먹여 생산하는, 빠르게 성장하고 가슴살이 두둑한 일명 ‘뻥튀기 닭’을 이르는 용어다.

1940년 페니실린으로부터 시작된 항생제는 ‘기적의 약물’로 통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소한 감염조차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사소한 상처가 감염으로 번져 목숨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 부상 군인의 6분의 1, 폐렴환자의 30%, 산모의 상당수가 사망했다. 기적의 약물은 이런 비극을 멈췄고, 항생제는 인간은 물론 동물에게도 마구 사용됐다. 특히 동물에게는 치료용보다는 성장촉진용으로 더 많이 투여됐다. 심지어 항생제를 희석한 용액에 도살한 닭을 담금으로써 육류가 상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애크러나이징(acronizing)을 공정 혁신 사례로 자랑할 정도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역습이 시작됐다. 항생제가 공격했던 세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성을 키웠다. 더 강력해진 세균에 의한 집단감염 등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졌다. 신약을 개발하면 세균이 그에 맞는 내성을 갖추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 의욕마저 잃은 상태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슈퍼버그가 등장하면서 어지간한 신약으로는 해결 불능의 사태마저 빚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항생제를 인간 치료용으로 남발한 것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육용 동물의 성장 촉진과 질병 예방을 위해 공장 축사에 일상적으로 퍼부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항생제의 80%, 전 세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가축이 소비한다는 것. 내성을 가진 세균들은 고기와 계란, 축산 폐수, 유통과정, 관련 종사자 등을 통해 더 멀리, 심지어 온 세계로 퍼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항생제의 성장 촉진 효과가 초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할 정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을 깨닫고 변화를 모색한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노력하면 희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항생제를 포기한 네덜란드 농부, 성장촉진제와 예방적 용도의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퍼듀·벨&에번스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 저속 성장 품종으로 바꾼 홀푸즈, 중소 규모 농장들의 성공 사례 등이 그렇다.

저자는 “사람들은 흔히 항생제 포기는 결국 공장식 축산의 포기로 이어질 거라고 하지만 100% 맞는 말은 아니다”며 “백신 주사나 다른 보충제, 운동할 기회나 공간, 자연채광 등의 보완적 조치만으로도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거나 최소한만 써도 실내 집중사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 가금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의 단일종으로 바뀌어버린 닭 품종의 다양성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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