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걸프만의 빈 배들

입력 2019-03-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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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최대 원유수송로인 중동 해역에서 빈 탱크로 항해하는 유조선이 늘고 있다. 그동안 중동산 원유를 가득 싣고 걸프만을 오가던 유조선들이 기름 대신에 배의 평형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바닷물만 싣고 운항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수입 물량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셰일 원유 증산 덕분에 10년 새 두 배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1200만 배럴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다. 셰일 원유의 기술혁신으로 배럴당 50달러 이하에서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셰일 원유를 시추해서 생산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2~3년에서 6개월 미만으로 줄였다. 그만큼 국제 유가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원유 수출 물량도 크게 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수출 원유를 싣고 떠난 유조선들이 빈 탱크로 돌아와 다시 기름을 싣고 해외로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로키산맥 인근 지역에서 미국이 300년간 쓸 수 있는 셰일 원유 층이 발견됐다. 석유를 대체할 셰일가스 관련 기술에서도 미국은 단연 앞서 2009년 세계 1위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다. 미국 셰일가스는 2040년 전 세계 공급 물량의 60%를 차지할 전망이어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에너지 패권이 석유 중심의 중동에서 석유·가스를 아우르는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미국 셰일 혁명의 파도는 에너지 지정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제 무역 흐름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에너지 소비대국에서 수출대국으로 변모하면서 자원을 무기로 한 국제 정치역학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동 위주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새로운 카르텔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은 가격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수출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해외로 나갔던 미국 기업의 귀환도 빨라지고 있다.

메건 오설리번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셰일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그 파장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식량과 에너지 두 가지를 모두 자급자족하는 미국의 패권에 맞설 나라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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