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생태계와의 경쟁으로 결정
신기술 정착엔 정부 리더십도 중요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된 카풀과 택시가 마침내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충분하지 않은 듯 보인다.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은 합의 거부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스타트업 진영에서는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있다. 카풀과 택시의 갈등은 운송산업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과 기존 생태계의 새로운 대립 양상을 보여준다. 즉, ‘할지 말지’의 문제를 넘어 생태계의 문제로 발전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신기술과 기존 생태계
기술은 ‘언제’의 문제, 즉 구현될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지 못하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잠재력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이 생태계와 보완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4K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더라도 고화질 카메라, 새로운 방송 기준, 고용량 파일을 처리할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발전 등이 동반될 때 비로소 소비자의 시청 경험으로 이어진다. 기술 자체가 가진 잠재력과 무관하게 생태계의 준비 없이는 기술은 구현되기 어렵다. 반면 기존기술은 신기술보다 생태계 의존도가 낮다. 이미 생태계에 정착한 이상 핵심 기술에 대한 혁신 없이도 개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RFID는 바코드 기술에 비해 뛰어난 기술이지만,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무선환경, 보안기술 등의 생태계 발전이 필요한 반면 바코드는 그 자체의 기술혁신 없이 정보통신환경 등의 단순한 인프라 강화만으로도 활용범위를 넓혀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기술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RFID의 활용이 저조한 이유이다.
신기술 생태계와 구기술 생태계의 경쟁
신·구 생태계의 경쟁에서 신기술은 얼마나 빨리 생태계가 기술의 잠재력을 반영할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반면 구기술은 기존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는 발전만으로 얼마만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하드디스크 없이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이 신기술이라면, HDD에서 SSD로의 발전하는 하드디스크의 발전은 기존 생태계 내에서 구기술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신기술에 의한 대체는 기존 생태계 내에서 구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신기술 생태계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속도가 빠를 때 결정된다. 다트머스 경영대학원 교수 론 애드너는 2016년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Right Tech, Wrong Time」을 통해 이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즉, 구기술을 위한 생태계 연장 기회의 높고 낮음과 신기술을 위한 생태계 형성의 어려움을 높고 낮음으로 분류해 대체가 ‘빠르게 이뤄지는 경우’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그리고 ‘신속한 대체 후 정체가 이어지는 경우’ ‘대체가 느리게 이뤄지는 경우’로 나누었다. 지나치게 이른 혁신으로 필요한 힘을 모두 소진해 실패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기업은 4가지로 구분된 생태계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영역은 신기술 생태계의 힘이 약하고, 구기술 생태계의 힘이 강해 ‘대체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영역’과 그 반대인 ‘신속한 대체 후 정체가 이어지는 경우’이다. ‘대체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영역(치열한 공존)’에서는 구기술의 힘이 여전하므로 신기술 생태계의 상당한 개선 없이 대체는 진행되기 어렵다. 신기술 생태계는 보다 더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신속한 대체 후 정체가 이어지는 경우(회복의 착각)’에는 신기술 생태계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 영역에서의 대체는 신기술 생태계의 성숙이 아닌 구기술 생태계의 취약함으로 인해 발생한다. 내비게이션은 기존 생태계의 약함 탓에 지도를 빠르게 대체했지만 이후 정체가 이어지는 것은 신기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 및 통신 환경 등의 생태계가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태계 형성과 정책적 리더십
한편 신기술이 가져다 줄 미래의 가치는 신기술 기업의 생태계 분석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신기술 기업에 생태계 분석은 주어진 제약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이들 분석의 초점은 현재이고, 정적일 수밖에 없다. 생태계는 신기술 기업이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 간 타협으로 조성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혁신은 미래에 초점을 맞춘 동태적 변화인 탓에 어떤 형태로든 기존 생태계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할지 말지’의 논의가 명확해졌다면,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논의와 이를 리드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성공이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으로 정의된다. 기술과 기업, 생태계와 정부라는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어질 때 옆 사람의 것이 아닌 미래의 내가 가지게 될 가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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