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사상 최대 매출이 씁쓸한 이유

입력 2019-03-18 18:01  

현장에서

中 보따리상만 바라보는 면세점
유치경쟁으로 '상시할인' 공세
매출 늘어도 이익은 줄어

안재광 생활경제부 기자



[ 안재광 기자 ] “요즘 국내 면세점에는 단체관광객, 제값 내고 사는 사람, 화장품 재고 등 3가지를 찾기 어려워요.”

지난 2월 국내 면세점 매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나온 18일 한 면세점 관계자는 이런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따이궁은 면세점에서 물건을 대량 구입한 뒤 자국으로 돌아가 마진을 남기고 판매하는 소규모 사업자를 말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 단체관광객이 급감하자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한국 화장품 등 면세품 수요가 많은데도 한국 방문길이 막히자 이 수요를 따이궁이 채웠다.

따이궁의 구매력은 막강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방한 외국인이 면세점에서 쓴 1인당 평균 금액은 약 106만원에 달했다. 이 수치가 100만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작년 2월 76만원 대비 40%나 뛰었다. 이 덕분에 국내 면세점은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1조74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에선 이 매출의 약 70%를 따이궁이 채운 것으로 본다.

따이궁 의존도가 커지면서 발생한 현상 중 하나가 ‘상시 할인’이다. 면세점은 구매액이 클수록 할인폭을 늘려 따이궁을 유인한다. 할인율은 10~30%에 달한다. 여기에 구매액의 10% 안팎 적립 혜택을 준다. 관세와 부가가치세 환급, 포인트 적립 등을 더하면 정상가의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하는 저렴한 가격이다. “면세점에서 제값 주고 사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이궁이 찾는 브랜드는 늘 재고가 달린다. 인터넷 면세점에선 ‘재고 없음’이 일상화됐다. “따이궁에게 우선 판매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면세점들도 따이궁 특수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반 관광객에 비해 남는 게 많지 않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 실적만 봐도 그렇다. 2014년 9%를 넘은 영업이익률은 작년 4% 안팎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할인뿐 아니라 송객 수수료까지 지급한 영향이다. 작년 국내 면세점이 지급한 송객 수수료는 1조3181억원에 달했다.

따이궁에 의존한 영업은 지속 가능하기 힘들다. 중국 정부가 따이궁에 규제의 칼을 빼들면 금세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자국 면세산업을 키우기 위해 하이난 등에서 면세 한도를 계속 늘리고 있다. 사드 보복 2년이 흘렀지만 중국은 온라인 단체여행, 단체비자, 전세기 및 크루즈 취항 금지 등 3불(不) 보복 조치를 풀지 않고 있다. 북한 핵 해결이 꼬이면서 우리 정부의 중국 경제외교도 실종됐다. 면세점들이 중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장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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