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정철 기자 ]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미국 블룸버그통신 기사를 겨냥해 내놓은 논평이다. 지난해 9월 나온 외신 기사에 여당이 6개월이 지나서야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전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설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에 빗댄 연설 내용이 블룸버그 기사를 인용한 것이어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나 원내대표의 연설이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논평으로 해당 기자의 인적 사항이 공개되자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해당 기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검은머리 기자’가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며 공격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이번 사건이 민주당의 편협한 언론관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례일까. 민주당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내부고발을 두고 “스타강사가 되기 위해 나왔다”고 폄하했다. 성창호 판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법정구속하자 그를 ‘양승태 키즈’라고 낙인찍었다. 이처럼 민주당의 비판 대상은 사법부, 언론 등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에 집중돼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다양성’이란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의 대변인이 ‘검은머리 외신’이란 표현을 쓰며 해당 기자를 깎아내린 점이다. 외신기자클럽에 이어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AAJA)도 19일 “기자의 국적을 빌미 삼아 외신 보도를 깎아내리는 행태, 외신은 외국인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편견에 유감을 밝힌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민주당이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비판이 거세지자 19일 사과논평을 냈다. 논평에서도 검은머리 외신 표현 등에 대해선 적절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민족적 또는 사회적 기원, 재산 또는 출생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윤리 규범이 있다. 언론과 사법부에 대한 여당의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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