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지도부에 위임해달라"
바른계 "당론 추인 거쳐야" 반발
[ 하헌형 기자 ] 바른미래당이 20일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지를 두고 마라톤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당이 주장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의 세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선거법 패스트트랙 공조’에서 빠지겠다는 원칙 아래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의총에는 소속 의원 29명 가운데 당 활동을 하지 않는 박선숙·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과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박주선 의원을 제외하고 24명이 참석했다. 손학규 대표와 이준석 최고위원 등 지도부에 속한 원외 인사들도 함께했다. 이날 의총은 유승민·지상욱·유의동 의원 등 선거제 개편 추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의원 8명이 전날 긴급 의총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열렸다.
4시간40분가량 이어진 의총에선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는 국민의당계 의원들과 이를 반대하는 바른정당계 의원들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한 결정 권한을 당 지도부에 위임하자고 했으나,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당론으로 추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론으로 추인되려면 소속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바른정당계 의원과 김중로·이언주 의원 등 최소 9명이 패스트트랙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사실상 당론 추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유승민·김중로·이언주 의원은 의총 중간에 먼저 자리를 떠났다. 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과 국회법은 과거 다수당의 횡포가 심했을 때도 ‘숫자의 횡포’를 통해 결정한 적이 없었다”며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이날 공수처 설치법 야당안 수용을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의 연계 조건으로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공수처법 통과가 관철되지 않으면 선거법 패스트트랙 지정 절차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선 공수처장추천위원회를 만들고 추천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겠다”고 했다. 추천위원은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1명씩 임명하고 여당에서 1명, 여당 외 다른 교섭단체에서 3명을 뽑기로 했다. 김 원내대표는 “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공수처장 임명에) 반대할 경우 5분의 3 이상 요건에 미달돼 공수처장이 임명되지 않는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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