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편해져서 불편해진 것들

입력 2019-03-20 18:11  

전희권 < 에스퓨얼셀 대표 sales@s-fuelcell.com >


모처럼 산뜻한 봄 날씨에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 커피가게로 향했다. 문득 중학교 시절 배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하는 노래가 떠올랐다. 필자가 살았던 마을에는 산과 들에 진달래가 지천에 피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냥 먹었고, 어른들은 찹쌀가루 지짐에 올려 화전을 하거나 두견주를 담그고 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에 비해 어린 시절에는 부족하고 불편한 것들이 훨씬 많았지만 지천에 널린 풀과 꽃을 따먹고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는 깨끗한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있었다.

지난겨울에는 ‘삼한사온’ 대신 따뜻한 날이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미세먼지를 뜻하는 ‘삼한사미’가 일상이 됐다. 축구를 좋아하는 딸 아이 손을 잡고 근처 학교 운동장을 찾을 때 미세먼지 예보를 미리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요즘 새로 생긴 불편함이다.

이달 상순에는 사상 최장 기간의 고농도 미세먼지 때문에 숨쉬기 힘든 날들을 견뎌야 했다. 벌써부터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어떤 ‘불편함’이 나타날지 걱정된다. 기상청이 최근 내놓은 ‘2018 이상기후 보고서’는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 혹한과 짧은 장마, 3월 이상고온과 10월 폭우 등을 다루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기상이변도 결국은 미세먼지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더 편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생긴 ‘새로운 불편함’들인데 오히려 과거의 불편함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필자가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엔지니어가 추구하는 최고 덕목은 ‘가치공학’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교육받은 엔지니어들은 거의 모든 현상을 ‘얼마나 효율적인가?’ 혹은 ‘그래서 경제성이 있는가?’로 판단한다.

여기에서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한 혹은 그럴 필요가 없던 부분이 바로 환경적, 사회적 비용에 대한 가치판단이었다. 미래에 지불될 비용들이 계산되지 않은 채로 왜곡된 효율과 경제성이 반영된 것이다. 결국 지금 화전이나 두견주는커녕 마스크 없이는 외출조차 안심하고 할 수 없는 환경과 여름 폭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초래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조금 덜 편리하더라도, 조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환경 또는 미래에 미치는 영향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기술의 가치에 반영하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축구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고, 에어컨 없이 부채만으로 여름을 날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비슬산 참꽃 축제에 아이들과 함께 진달래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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