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변동률 분석
[ 양길성 기자 ]
연립·다세대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같은 동네임에도 10~20배까지 차이나는 사례가 나왔다.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격이 더 높은 주택도 등장했다. 아파트보다 공시가격 상승률이 더 들쑥날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7개 동(洞)에서 연립·다세대주택 70곳을 표본으로 뽑아 올해 공시가격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상승률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논현동 연립주택 네 곳은 반경 50m 안에 있음에도 공시가격 상승률이 6.7~20.6%로 차이났다. 논현동 그린빌(전용면적 132㎡) 공시가격은 지난해 5억4000만원에서 올해 5억7600만원으로 6.7% 올랐다. 이에 비해 골목길 건너에 있는 논현드림빌(전용 154㎡) 공시가격은 작년 5억4400만원에서 올해 6억2200만원으로 14.3% 뛰었다. 그 옆 석탑빌라(전용 124㎡) 공시가격은 작년 5억1000만원에서 올해 6억1500만원으로 20.6% 급등했다. 망원동 다보아트빌라(전용 70㎡) 공시가격은 2억1500만원에서 2억1600만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직선거리로 200m 떨어진 동아하이트빌라(전용 83㎡) 공시가격은 2억2800만원에서 2억5200만원으로 10.5% 상승했다. 천호동 재니아천호(전용 17㎡) 공시가격은 9200만원으로, 지난해 10월 실거래가(9000만원)보다 높았다.
논현동 반경 50m 연립 4곳, 공시가 상승률 6.7~20.6% '제각각'
‘15.1% 대 0.7%.’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청담동서(전용면적 217㎡)와 삼익세라믹(전용 202㎡)의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이다. 50m 떨어져 있는 두 연립주택의 공시가격은 지난해만 해도 비슷했다. 각각 11억1200만원과 11억5200만원이었다. 그러나 청담동서 공시가격은 올해 12억8000만원, 삼익세라믹은 11억6000만원이다. 공시가격이 역전됐다. 삼익세라믹은 지난해 11월 16억5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청담동서는 실거래 내역이 없다. 같은 골목에 있는 청담하이츠(전용 170㎡) 공시가격은 작년 13억7600만원에서 올해 15억1200만원으로 9.9% 오른다.
실거래된 연립 상승률 높아
21일 한국경제신문은 강남권 4개 동(청담동 논현동 방배동 삼성동)과 비강남권 3개 동(불광동 미아동 망원동)에서 10곳씩 70개 주택(연립 또는 다세대)을 뽑아 공시가격 변동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인접한 주택의 상승률이 크게 차이 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됐다.
지난해 실거래 사례가 있는 주택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유난히 높았다. 삼성동에선 지난해 공시가격 5억~6억원대 연립주택 10곳 중 2곳의 올해 공시가격이 20% 이상 올랐는데 모두 지난해 실거래된 주택이다. 삼성동 효성빌라 404호(전용 116㎡) 공시가격은 5억1200만원에서 6억3500만원으로 24.0% 뛰었다. 지난해 5월 13억원에 실거래된 주택이다. 골목길 건너에 있는 삼성대우멤버스카운티3차 601호(전용 109㎡) 공시가격이 10.1% 상승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1월 10억7000만원에 실거래된 현대파크빌 402호(전용 133㎡) 공시가격도 5억2400만원에서 6억7500만원으로 28.8% 급등했다.
공시가격 2억원대인 저가 주택에서도 작년 실거래 유무에 따라 공시가격 상승률에 차이가 났다. 망원동 삼성아트빌 401호(전용 76㎡) 공시가격은 지난해 2억2800만원에서 올해 2억6100만원으로 14.5% 뛰었다. 이 주택은 지난해 4월 3억6800만원에 실거래됐다. 반면 한 블록 떨어진 레드빌 401호(전용 69㎡) 공시가격은 3.1% 상승에 그쳤다.
같은 동네인데도 실거래가 반영률이 크게 차이 나는 사례도 발견됐다. 강북구 미아동 거림아트빌라(전용 53㎡)는 올해 공시가격이 1억3000만원으로 지난해 8월 실거래가격(1억3000만원)과 같다. 실거래가 반영률이 100%다. 반면 바로 옆에 있는 대영빌라(전용 45㎡)는 지난해 6월 2억5050만원에 실거래됐으나 올해 공시가격이 1억700만원에 그친다. 실거래가 반영률이 50%도 안 된다. 미아동 J공인 관계자는 “두 주택은 모두 미아3 재개발구역에 있다”며 “어떤 주택형을 신청했는지에 따라 시세가 달라 전문가도 공시가격을 매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동별 공시가격 상승률 격차도 컸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논현동(16.6%), 청담동(16.1%) 등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비교적 높았다. 같은 인기 주거지역임에도 방배동 상승률은 4.6%에 그쳤다. 청담동에서는 고급 빌라를 중심으로 공시가격이 급등했다. 청담동 효성빌라 2층(전용 223㎡) 공시가격은 21억9200만원에서 28억4800만원으로 30%가량 뛰었다. 바로 옆 진흥빌라 2층(전용 194㎡)도 14억9600만원에서 18억4000만원으로 23% 상승했다. 청담동거리 주변에서는 삼익빌라(전용 218㎡), 현대빌라(전용 183㎡)가 각각 21%와 18.4% 올랐다.
“산정 기준은 비밀”
공시가격이 들쭉날쭉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공시가 산정 방식을 둘러싼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시업무를 맡은 감정원 직원 중 감정평가사는 절반에 못 미치는 200명가량”이라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력으로 표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1339만 가구의 공시가를 산정하다 보니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은 논란이 일 때마다 실거래가, 주택매매동향, 시세정보 등을 참조해 공시가격을 산정한다는 설명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공시가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밝힌 공시가격(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이 사실인지 의심이 든다”며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의 산정 근거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한국감정원의 공시가격 산정 체계가 부실하다고 지적한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경우 한국감정원 직원 550명이 지난해 8월 27일부터 올해 1월 11일까지 138일 동안 1339만 가구를 조사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180가구의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구조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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