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공정위의 '카풀 갈등' 침묵

입력 2019-03-21 18:08  

"'대담합' 의심받는 택시·카풀 합의
이용자 편익 빠진 '그들만의 상생'
공정위는 '정권 파수꾼' 되려는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 안현실 기자 ] “정부 당국의 행정지도를 기화로 행해진 업체들의 공동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때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행위를 문제 삼아 관련 업계에 과징금을 때렸다. 법원도 공정위의 이 같은 지침에 손을 들어줬다.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방송통신위원회 등 막강한 감독권을 쥔 당국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업체들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후 행정지도는 줄었을까? 그랬다면 업체들의 억울함이 그나마 덜하겠지만 상황은 딴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온갖 명분을 내건 가격 통제 등 위법으로 의심되는 행정지도가 난무하고 있다. 행정지도를 통한 담합 조장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데도 지금의 공정위는 아무 말이 없다.

택시와 카풀의 사회적 대타협기구 합의안 논란만 해도 그렇다. 카카오와 택시업계가 가까스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카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는 기득권끼리의 합의”라며 공정위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대신 ‘여당’, ‘행정지도’ 대신 ‘정치적 흥정’이 들어온 점만 다를 뿐, ‘대담합’ 아니냐는 얘기다. ‘경쟁’도 ‘소비자’도 보이지 않는 의문투성이 합의안이 나왔는데도 정작 공정위는 어떤 입장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

택시업계와 관련한 공정위의 수수방관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기존 택시시장이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 아닌 지 오래다. 서울시만 해도 택시요금을 통제하고, 결제 서비스를 장악하고, 사업자 역할까지 자처하는 마당이다. 서울시 자체가 거대한 기득권이자 이해당사자가 돼버린 것이다. 공정위는 기존 택시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이런 구조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택시업계라고 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혁신을 시도하는 쪽은 생각이 다르다. ‘택시회사 3세’라는 김재곤 타고솔루션즈 부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망할 때 망하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택시도 타다처럼 자유롭게 요금을 결정할 수 있고, 다양한 차종에 다양한 서비스를 할 수 있게만 해 준다면 카풀 같은 다른 서비스에 대해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이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 기존 택시의 경쟁 제한과 카풀의 진입 갈등은 상호 불가분의 관련성이 있다는 점이다. 양쪽을 동시에 깨야만 기존 택시 업체와 카풀 서비스 업체 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 카풀 스타트업들, 택시업계 내 혁신 시도자들 간 자유로운 합종연횡의 문도 활짝 열릴 수 있다. 이런 게 안 되고 있다는 건 공정위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정부나 지방정부, 정치가 담합을 조장하거나 그들이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공정위가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건 문재인 정부가 카풀 갈등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유경제는 이해당사자 계층이 있다”며 “이들 간 상생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그렇다. 공유경제만 이해당사자 계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인 공정한 경쟁에 관한 사안을 정치적 상생 이슈로 몰아가고 있다. 혁신을 들먹이면서 그 성공의 열쇠인 ‘이용자 편익’과 충돌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이해당사자 간 타협 운운하는 건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지금의 공정위는 정권 관점에서 이득이 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가려내는 데 뛰어난 것 같다. 교육부가 공개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메시지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사업자 단체가 구성사업자의 자유로운 활동을 구속한다”며 즉각 현장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가 택시업계 카풀 갈등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공정위가 ‘시장 파수꾼’인지, ‘정권 파수꾼’인지 모르겠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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