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랙 칸나 '아시아가 미래다'
19세기 유럽화, 20세기 미국화
21세기는 아시아화가 진행 중
[ 오춘호 기자 ]
‘아시아’란 용어는 서구인에게 다의적이면서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화려함’의 이면에 숨어있는 ‘쓸쓸함’으로 아시아를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아시아에 쉽게 접근하면서도 경계심을 갖는다. 사물이 헷갈리거나 잘 이해되지 않을 때 ‘아시아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 어떤 대륙보다 진취적이며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가치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데 대한 공포와 경계도 있다. 노쇠한 서구 문명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도 출신 컨설턴트인 퍼랙 칸나가 글로벌 사회에 대두하는 아시아를 소개한 《The Future is Asian》(아시아가 미래다·사이먼&슈스터 간)이 미국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대륙 전체다. 아라비아와 일본 호주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그는 책에서 서구인들이 아시아를 이해할 때 가장 오류에 빠지는 부분이 중국을 중심으로 삼는 사고라고 밝힌다. 아시아의 50억 명 인구에서 중국인은 15억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35억 명은 중국인이 아니다. 중국은 지금 거대 부채와 인구 고령화, 자국 기업을 우선하는 경제구조 등으로 해외 투자가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는 중국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얘기한다. 아시아는 훨씬 이전부터 각 지역에서 제국을 형성했으며 방대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지구촌의 화두가 ‘유럽화’였고 20세기가 ‘미국화’였다면, 21세기는 ‘아시아화(Asianization)’가 진척될 것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아시아화는 미국화, 유럽화와 다르다. 유럽화는 세계 경제에 제국주의적 관점을 심어줬지만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한 현대의 정부 형태도 만들었다. 미국화 역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탄생시키면서 국제사회에 민주적 의사결정 체제를 전파했다. 글로벌 무역과 투자협정 등을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산업화도 진전됐다.
많은 아시아 국가도 처음에는 서구의 의회 시스템을 본떴다. 사회복지 시스템 등 진전된 메커니즘을 이식했다. 서구화 모델을 뒤따르면서 근대화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의 아시아화는 다른 양상이다. 신(新)중상정책을 펴면서 성장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이 합심해 일구는 신산업화다. 저자는 캔버스에 색깔 있는 페인트로 덧칠을 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시아가 성장에 이르는 길에서 세 번의 큰 도약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2차대전 이후 일본과 한국의 성장이고, 두 번째는 중국의 등장과 성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남부와 동남아시아의 성장이라고 그는 규정한다. 한국과 일본의 성장은 인구 1억5000만 명이 일으켜 세운 것이지만 두 번째는 10억 명이 일군 것이다. 세 번째는 무려 25억 명이 연관된 성장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에는 서구 자본이 많은 기여를 했다. 중국의 성장에는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이 최대 투자자 역할을 했다. 동남아와 인도의 성장엔 중국이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아시아가 원숙한 아시아 투자에 덕을 보고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젊은 아시아 국가들은 평균연령이 30세 이하다.
저자는 이런 관계를 시스템 이론으로 설명한다. 시스템은 나라들끼리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구조다. 유럽 시스템이 그렇고 미국 시스템도 그렇다. 아시아에서도 이런 아시아 시스템이 전 지역에 걸쳐 부상하고 있다. 미국 시스템에서는 시장 경제와 기술 발전은 물론 각종 제도와 민주주의를 배웠다. 이후 각국끼리 민주주의를 서로 학습하고 시장 경제를 키워나갔다. 저자는 아시아 국가들의 활발한 교류가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아시아의 부상이 중국의 부상은 절대 아니라고 못박는다. 그런 점에서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은 시장을 중심에 놓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아시아는 결국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것이며, 서구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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