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은 중재자 아닌 당사자"
[ 김채연 기자 ]
북한이 22일 남북한 공동연락사무소에서 돌연 철수하면서 남북 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9월14일 문을 연 지 189일 만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미·북 간 긴장 국면이 지속되는 와중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조치를 두고 북측이 향후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제재 칼 빼들자 北 남북 교류 중단
북한의 이번 조치는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뒤 처음으로 독자 대북 제재를 단행한 직후 이뤄졌다. 미 재무부는 이날 새벽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회사 2곳에 제재 조치를 취하고, 불법 해상 거래에 대한 주의보를 갱신해 발령했다. 미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 의지를 고수하자 북한이 미국을 직접 비난하는 대신 남북 관계 균열을 경고하는 도발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측은 철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도록 하기 위한 북한의 압박성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에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과 협의에 나섰으나 미국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그럼에도 북한은 최근 선전 매체를 통해 우리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표해 왔다. 이날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는 우리 정부를 향해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말로는 북남선언 이행을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아무런 실천적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안타깝고 유감스럽지만 북측의 의도에 대해 예단하진 않겠다”며 “연락사무소 채널 외에 군 채널은 정상 가동되고 있어 종합적으로 보고 대응 방향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북측이 판문점 선언을 파기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을 아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우리 측 인원은 예정대로 근무할 예정이다. 우리 측 인원은 69명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번 주말에는 25명이 근무할 예정이다.
남북 교류 협력 중단 불가피
북한의 이번 조치로 남북 관계에 경색이 불가피해진 것은 물론 교류 협력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남북 관계 교류를 위해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을 추진해왔다. 특히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관련해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면제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상태라 북한과 추가 협의만 남았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교류 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통일부는 “북측이 철수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최근 북한에 ‘9·19 군사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할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제안했지만 북측이 이날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공동연락사무소의 초대 소장은 우리 측에서 천해성 차관이, 북측에서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맡았다. 그러나 전종수는 내부 사정을 이유로 지난달 1일 이후 3주 연속 소장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남북 대화를 당분간 접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남북 관계를 훼손하는 과거 패턴의 반복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에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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