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섭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7월 공원 용도에서 해제돼 아파트단지 등으로 개발이 가능한 전국 도시공원의 사유지를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던 도시공원이 대거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국비를 지원해 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원욱 민주당 정책위원회 3정조위원장은 24일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으로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도시공원 용지의 개발 권한이 민간에 넘어갈 위기에 놓여 있다”며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 사태에는 지자체의 책임도 있어 우선 자구 의지와 노력을 확인할 계획”이라며 “이런 노력에도 지자체 재정으로 역부족일 경우 도시공원 매입을 국비로 돕겠다”고 말했다. 또 “조만간 편성될 미세먼지 추가경정예산에 지원금액이 포함되도록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으로 내년 7월 1일 전국적으로 397㎢(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의 도시공원이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된다. 이 중 약 284㎢(71.7%)가 사유지다. 일몰제가 시행되면 재산권 행사 제한이 풀려 땅주인은 공원 부지를 개발할 수 있다.
민간에 개발권 넘어가는 도시공원
고승덕 변호사와 부인 이모씨는 2007년 42억원에 산 서울 이촌동 공원 부지를 237억원에 되팔기로 용산구와 지난달 합의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공원 자체가 없어질 위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공원 용지였던 이곳은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 이후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고 변호사가 마음만 먹으면 공원 대신 상가나 4층 이하 주택이 들어설 수 있었다는 얘기다.
도심 숲이 빌딩 숲으로 바뀔 수도
더불어민주당이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공원 매입을 지원키로 한 것은 내년 7월 1일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 후 이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시행이 결정됐다. 공익 목적이라도 사유재산을 국가가 적절한 보상 없이 장기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2000년 6월 30일 이후 20년 동안 공원으로 지자체가 매입하지 않은 부지는 공원 용도로서 효력이 상실되도록 도시계획법이 개정됐다. 내년 6월 30일 기한이 끝나는 데 지자체가 매입하지 않은 시설 중 공원이 가장 많아(50.9%) ‘도시공원 일몰제’라 한다.
일몰제가 시행되면 재산권 행사 제한이 풀려 소유주는 공원을 개발하거나 일반인 출입을 막을 수 있다. 도심 공기 정화와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공원이 주택 단지나 빌딩으로 바뀔 수 있다. 전국적으로 내년 7월 도시공원 효력을 잃는 공원은 2156개, 면적은 약 397㎢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달한다.
이 중 서울에서 내년 일몰이 되는 공원은 95.6㎢다. 삼청공원, 안산도시자연공원, 성산근린공원, 개화산 개화근린공원, 자연생태 체험 교육장 일자산 도시자연공원, 관악산·북한산·인왕산 도시자연공원, 남산 일대 근린공원 등이 공원 용지에서 해제된다. 면적으로 따지면 여의도의 33배 크기에 해당한다.
돈없어 도시공원 매입 불가능
대규모 공원 용지가 해제될 위기에도 중앙·지방정부는 ‘핑퐁게임’을 하듯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지자체는 중앙정부 지원 부족을, 중앙정부는 20년 동안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은 지자체의 무책임한 대응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도시공원은 지자체가 모두 매입하는 게 원칙이지만 재정 여건상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내년 일몰이 되는 공원 부지 95.6㎢ 중 사유지만 매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16조5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서울시 예산(31조8811억원)의 51.7%로, 절반이 넘는다.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4월 지방채 발행 이자를 50% 지원하는 지원 계획을 내놓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방채 발행 비용을 지원한다는 건 지방정부가 빚을 내서 땅을 사라는 것인데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도시공원 매입 자금의 50%를 중앙정부가 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일몰제 시행이 1년3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발등의 불이 떨어지자 지자체들은 관련 예산 편성을 급격히 늘리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개발 정보 업체 ‘지존’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도시공원 매입 예산은 지난해 4978억원에서 올해 1조8563억원으로 272% 늘었다. 서울시는 올해 9600억원의 예산을 반영해 사유지들을 사들이고 있다. 내년까지 1조6000억원을 들여 사유지 2.3㎢를 매입할 계획이지만 나머지 37.5㎢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선 중앙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공원 용지가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되면 난개발로 갈 수밖에 없다”며 “중앙·지방정부는 공원 용지 중 국공유지를 일몰에서 제외하고, 사유지 매입과 공원 조성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부는 이 같은 요구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에게 고르게 사용돼야 할 국비를 일부 지자체 주민만 혜택을 보는 공원 매입에 쓰는 건 문제가 있다”며 “도시공원 소유권이 있는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다만 이 상황을 20년 동안 방치한 지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 각 지자체의 자구 노력을 확인한 뒤 국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무조건 국비를 들여 공원을 매입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지자체에 돌아가는 지방세가 2022년까지 늘어나는 만큼 각 지자체가 공원 매입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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