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없는 소송, 장기화 불가피
국가의 과실 여부 입증과
배상 범위 등 쟁점 수두룩
[ 신연수 기자 ] 2017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국가배상 소송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전체 배상 액수가 최대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법조계는 국가의 고의·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것부터 배상 범위까지 쟁점이 많아 ‘장기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고 1만 명에 전체 배상액 9조원
25일 법조계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등에 따르면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포항시민의 문의가 하루 300~400건씩 빗발치고 있다. 범대본은 지진 피해 직후 결성된 단체로 지난해부터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등에서 두 건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접수한 1차 소송에는 원고 71명이, 지난 1월 2차 소송에는 원고 1156명이 참가했다. 범대본 네이버 밴드 가입자는 약 8000명(25일 기준)에 달한다.
지난 20일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의 원인이 국가 연구개발 과제로 진행된 지열발전 실험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지진으로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으며, 1797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도 200명 가까운 주민이 포항 흥해체육관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성은 범대본 공동대표는 “정부 조사 발표 후 모집 중인 3차 소송에 벌써 1000명 넘는 시민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다음달까지 1만 명 이상이 모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소송 규모가 9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포항시민 50만여 명이 모두 소송에 참여해 5년간 매일 5000원의 위자료를 받고, 부동산 소유자 15만여 명이 평균 3000만원 상당의 부동산 가치 하락분 및 수리비를 배상받을 경우를 상정했을 때다. 범대본은 부동산 공시지가 가격 변동 등에 따라 위자료 액수가 최대 50조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1심만 3~4년 걸릴 것”
소송의 주요 쟁점은 국가의 고의·과실이 인정되는지, 지열발전에 따른 인공지진을 환경오염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이다. 연구단 조사 결과 지열발전 때문에 지진이 발생한 것은 인정됐으나 국가가 그 위험성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는 별도 입증이 필요하다. 소송을 대리 중인 법무법인 서울센트럴의 이경우 대표변호사는 “지열발전으로 인공 진동을 가해 환경에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에 환경오염 사건으로 볼 수 있다”며 “환경오염 사건으로 인정되면 원고의 입증 책임이 완화되기 때문에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배상 범위를 놓고도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지진과 관련한 소송이 드물어 지진으로 인한 피해나 국가 책임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실상 없다. 포항시가 산정한 시설물 피해액은 845억원, 한국은행이 집계한 직간접 피해액은 약 3000억원이다. 지진 피해 당시 정부는 법령에 따라 민간주택에 한해 전파(全破)·유실에 900만원, 반파(半破)에 450만원을 보상했다. 법조계에선 1심 소송만 3~4년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별법을 제정해 보상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포항지역 50여 개 단체로 구성된 포항11·15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는 다음달 2일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4일 포항을 방문해 “당론으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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