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는 제재 없이 뒷짐만
지자체 '현금 살포' 확산 부추겨
[ 김일규/임락근 기자 ] 각 지방자치단체가 막무가내식으로 복지사업을 늘리고 있지만, 이를 협의·조정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복지부의 수수방관에 지자체 복지 폭주가 더 거세지는 모습이다.
서울 중구는 25일 관내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대상자 1만1000여 명에게 1인당 10만원(지역화폐)의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지급이다.
중구는 지난해 11월 이 사업에 대해 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했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신설하려면 복지부와 협의해야 한다. 복지부는 올해 1월 중구에 재협의를 요청했다. 공로수당이 기존 기초연금과 비슷해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공로수당이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 기초연금(월 25만원)에 사실상 현금 10만원을 더 얹어주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중구는 재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지난달 25일에 이어 이날까지 공로수당 지급을 강행했다.
기초연금법 시행령은 기초연금과 비슷한 성격의 수당을 지급하는 지자체에 대해 기초연금 국비 지원금을 10% 삭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 중구에 지원되는 기초연금 국비는 약 270억원이다. 복지부는 그러나 중구가 재협의 절차를 무시하고 공로수당을 두 번이나 지급했는데도 기초연금 국비를 삭감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구와 계속 재협의하고 있다”고만 했다.
복지부가 ‘휘두를 칼’이 있음에도 미적거리는 건 다른 지자체에도 현금 살포식 복지를 확대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에 따라 국비를 깎으면 될 일인데, 지자체에 계속 끌려다니는 인상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복지부가 서양호 중구청장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서 청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복지부 스스로 입지를 좁힌 측면도 있다. 복지부는 2015년부터 서울시 청년수당에 대해 “과잉 복지”라며 반대하다 2017년 ‘복지 확대’를 내세운 정권이 들어선 뒤 돌연 태도를 바꿔 수용했다. 지난해엔 그동안 반대하던 경기 성남시의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 지원) 사업까지 손을 들어줬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복지부가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중앙부처로서 복지 컨트롤타워 기능을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임락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