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직자 재산공개, 왜 밤 12시에 할까

입력 2019-03-28 17:42  

백승현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 백승현 기자 ] “기자 여러분, 오늘 재산공개 브리핑한 내용은 오늘 밤 12시까지 엠바고(보도유예)입니다. 그 전엔 사진도 나가선 안 됩니다.”

지난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정기 재산변동 사항’ 사전 브리핑 직후 인사혁신처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인사처 관계자의 요청대로 관련 기사는 이날 밤 12시까지 한 꼭지도 나오지 않았다.

인사처가 운영을 지원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매년 3월 말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재산변동 내역을 공개한다. 청와대 참모,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1년 동안 부동산을 얼마나 사고팔았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예금은 얼마나 증감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국민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벤트’다.

공개는 전자관보를 통해 이뤄진다. 관보란 정부가 국민에게 널리 알릴 사항을 정리해 간행하는 국가의 공고 기관지다. 전자관보 게재는 원칙적으로 새 날이 시작되는 0시가 기준이다. 법령 공포 등도 관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0시 원칙’은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공개의 경우에도 이 원칙이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일까.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는 개정 법령의 공포 등과 달리 관보 게재 즉시 국민의 권리의무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거나, 사전정보 취득으로 특정 이해당사자가 이익을 챙길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관보는 관보대로 시간을 지키되, 최종 검수본이 확정됐으면 몇 시간이라도 미리 언론을 통해 공개해 국민의 알권리를 배려하면 어땠을까.

또 다른 장면 하나. 인사처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 재산변동 신고자 2997명 중 2명에 대해 허위신고 등의 이유로 징계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누가 어떻게 재산 신고를 잘못했는지와 어떤 수준의 징계가 내려졌는지에 관해서는 “개인신상의 문제”라며 일절 함구했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그 자체만으로도 공무원들로서는 불편한 일이고, 구태여 일찍 공개할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다. 징계 사실 공개는 ‘이중처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 인사행정을 혁신하겠다며 2014년 야심차게 출범한 인사혁신처가 보여준 일련의 행정이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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