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가 항문암·구강암까지 일으켜…남녀 청소년 모두 예방백신 접종해야"

입력 2019-03-29 17:31  

'HPV 권위자' 사비에르 보쉬 교수

美·獨·佛 등 '9가 백신' 채택
자궁암 바이러스 90% 차단
韓도 효과 높은 백신 맞아야



[ 이지현 기자 ]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국가예방백신접종사업(NIP) 대상을 4가에서 9가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여성들만 대상으로 했지만 이제는 남성도 접종하도록 바꾸고 있습니다. 중년 여성들까지 접종 대상에 포함하고 있죠.”

HPV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사비에르 보쉬 스페인 카탈로니아 종양학연구소 교수(사진)는 “HPV 4가 백신으로 자궁경부암 유발 바이러스의 70%를 막을 수 있지만 9가 백신으로는 90%를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HPV는 생식기 사마귀, 자궁경부암, 항문암, 구강암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12세 여성을 대상으로 2016년부터 HPV NIP를 시행했다. NIP 대상인 아이들은 두 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2가 백신과 네 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4가 백신을 공짜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호주 캐나다 등 27개 국가는 9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9가 백신을 NIP로 접종하고 있다. 4가 백신보다 9가 백신의 예방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보쉬 교수는 “1세대 HPV 백신(2가 백신과 4가 백신)은 자궁경부암 원인의 70%를 차지하는 16형과 18형을 포함하고 있다”며 “2세대 백신인 9가 백신은 52형과 58형 등이 포함돼 암 발생을 90%까지 막을 수 있다”고 했다. 9가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52형과 58형은 한국 여성에게 암을 많이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김영탁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HPV 52형, 58형이 많이 나온다”며 “국내에서 HPV 백신에 HPV 52형, 58형이 포함돼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HPV에 대한 연구가 늘면서 이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항문, 구인두 부분에도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암을 일으키는 비중은 다르다. 자궁경부암은 HPV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암은 30~4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보쉬 교수는 “HPV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기는 암은 전체 암 발생의 5%여서 암 환자 20명 중 1명이 HPV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 있다”며 “여성 암에 더 많은 영향을 줘 개발도상국 여성은 암의 14%가 HPV 감염과 관련 있다”고 했다.

생식기 사마귀도 HPV 때문에 생긴다. 김 교수는 “HPV 백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생식기 사마귀 예방”이라며 “국내에서 생식기 사마귀 환자는 매년 9% 정도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자궁경부암은 물론 생식기 사마귀를 예방하기 위해 HPV 백신을 NIP에 포함했다. 자궁경부암보다 생식기 사마귀 치료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HPV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중요하다. HPV는 성관계를 통해 주로 전파된다. 성관계를 시작하기 전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 남성들에게서 항문암이 증가하고 있는데 HPV와의 관련성이 75~100%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항문암과 구강암은 성적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남성 접종도 중요하다”고 했다.

국내 HPV NIP 접종률은 83%다. 도입 초기보다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부작용 때문에 접종을 꺼리는 학부모가 많다. 이에 대해 보쉬 교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접종 후 이상반응을 조사했는데 82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평가에서 안전하다고 나왔다”며 “HPV 백신은 세계적으로 3억 도즈 이상 접종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미 발견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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