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품격] 주부들 불편 딱 하나 바꿨을 뿐인데…홈쇼핑 1시간 만에 1만2000개 '불티'

입력 2019-03-30 07:30   수정 2019-07-03 13:31



2002년 모 홈쇼핑 방송에 그동안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제품이 나왔다. 붕어빵 기계처럼 생긴 양면 프라이팬이었다. 생선을 구울 때 옷에 기름이 튀거나 화상을 입는 등 주부들의 불편함을 해소시킬 제품이라고 쇼호스트가 소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방송 1시간 만에 1만2800개가 팔렸다. 1시간 안에 홈쇼핑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2001년 45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매출은 방송 이듬해 450억원으로 10배 뛰었다.

양면팬의 탄생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에서 올라와 남대문시장에서 주방잡화 장사를 하던 이현삼 전 해피콜 회장은 자신이 직접 주방 용품을 만들어 팔고 싶다는 생각에 1999년 '해피콜'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2년 간의 연구개발 끝에 2001년 '양면팬'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 10억원을 전부 쏟아부었다.

이 전 회장은 주부들이 생선을 구울 때 기름이 많이 튀어 손에 화상을 입거나 집안 가득 퍼지는 냄새 때문에 가정에서 생선 요리하기를 꺼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2001년 붕어빵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위아래로 열고 닫으며, 뒤집어서도 쓸 수 있는 양면으로 된 프라이팬을 만들었다.



막히는 부분은 과감히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양면팬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 다우코닝사와 1년 동안 공동 연구를 하며 기름·국물·연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팬 테두리에 특수 실리콘 압력 패킹을 고안해냈다.

1999년도에만 해도 국내 주방업계는 수입 브랜드가 휩쓸고 있었다. 국산은 팬 내부의 코팅이 벗겨지는 등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오로지 저렴한 가격에만 있었다.

해피콜의 양면팬은 다른 국산 제품보다 3배 이상 비쌌지만 40~50대 주부들이 앞다퉈 찾았다. 고순도 소재와 최고 등급의 코팅원료를 사용해 긁힘과 마모, 부식에 강하다고 입소문을 타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양면팬이 불티나게 팔리자 이 전 회장은 개인돈과 회삿돈을 구분하지 않고 투자해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장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부 직원이 국세청에 고발하면서 회사가 빚더미에 올랐다. 2007년 공장과 건물을 모두 팔아 빚을 갚았다.

다시 빈손이 된 이 전 회장은 새로운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이번에는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이 목표였다. 양면팬처럼 평소 요리를 하는 주부들의 모습을 자세힌 관찰한 끝에 얻어낸 아이디어였다.

2008년 양면팬의 '대박 행진'을 이어갈 제품인 '다이아몬드 프라이팬'이 나왔다. 바닥을 두껍게 만들어 음식이 잘 타지 않게 하는 대신 옆면은 얇게 가공해 무게를 줄였다. 내부는 다이아몬드 나노입자로 코팅해 열 전도율을 높이고 식재료가 눌어붙지 않게 만들었다. 부산대와 손잡고 코팅약품도 공동 개발했다.

다이아몬드 프라이팬은 양면팬을 써 본 주부들이 먼저 나서 홍보를 자처했다. 다이아몬드 프라이팬도 일반 프라이팬보다 2배나 비쌌지만 현재까지 2000만개 이상 판매됐다. 주부들이 '입소문'을 내준 덕분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해피콜 관계자는 "'다이아몬드 프라이팬'은 코팅이 쉽게 벗겨지고 청소가 어렵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나온 제품"이라며 "내면에는 다이아몬드 코팅기법이 적용돼 기름을 적게 사용해도 음식물이 잘 눌어붙지 않도록 제작돼 주부들의 호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양면팬은 누적 판매량이 2000만개를 넘었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주력 제품이었던 다이아몬드 프라이팬의 누적 매출액은 2500억원에 달했다.

해피콜은 미국·중국·인도네시아·태국·대만에 현지법인을 두고 20개 나라로 제품을 수출한다. 생산은 모두 국내에서 한다. 품질관리를 위해 공장 한 곳에서 하나의 제품만을 만드는 '1공장 1제품 원칙'도 고수하고 있다.

해피콜은 '양면팬'과 '다이아몬드 프라이팬'을 이을 세 번째 히트 제품인 초고속 블렌더를 2015년 내놓고 소형 가전시장에도 진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초고속 블렌더를 필두로 가전시장에서도 안착한다면 내년 매출이 현재의 2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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