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태윤 산업부 기자) 지난 2월 13일 현대·기아자동차는 “올해부터 1년에 두차례 뽑아오던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공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졸 정기공채 폐지 이유는 “기존 대규모 공채방식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융복합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꺼번에 신입사원을 뽑다 보니 각 현업부서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현대차는 인재채용팀이 도맡아 왔던 채용도 현업 부서로 넘겼습니다. 이에따라 앞으로는 현업 부서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채용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게 됐습니다. 현대차는 ‘수시공채’선언 직후 곧바로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20개 직무에 대한 채용공고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수시공채’ 이유는...
현대차의 수시공채는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장을 지낸 한성권 현대자동차 상용사업담당 사장은 지난 2015년 한 인사담당자 포럼에서 “지금같은 공채시스템으로는 현대차가 찾는 ‘올바른 인재(Right people)’를 뽑기 어렵다”면서 “2016년부터는 대졸 신입사원 공채비중을 50%이하로 낮추고 다양한 채용채널을 통해 인재를 확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채용정책 때문인지 현대차는 매 시즌마다 새로운 채용방식을 쏟아냈습니다. 상시채용·인턴십·연구장학생·계약학과 등의 채널뿐아니라 길거리 캐스팅 ‘The H’란 새로운 프로그램도 도입했습니다. 길거리 캐스팅이란 장기 인성 검증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입니다. 인문계 출신들의 입사 경쟁률이 300~400대1이 되면서 자기소개서 만으로는 더 이상 평가를 할 수 없게 되자, 2013년부터는 3분 자기PR을 통해 신입사원을 뽑기도 했습니다. 3분PR은 현직자 앞에서 지원자가 자신의 역량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현대차는 국내인재 뿐 아니라 해외의 우수한 S급인재 유치를 위해 2011년부터 ‘글로벌 톱 탤런트 포럼’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발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채용방식도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고와 악화되는 실적 앞에 현대차는 중대 결단을 내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차는 공채와 함께 상시·인턴·경력직 채용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영기 현대차 인력운영실장(이사)는 “자동차 산업과 전자산업의 경계가 모호해 지면서 현대차는 ‘모빌리티 컴퍼니’로 변화하고 있다”며 “친환경, 자율주행, 커넥티드카에 적합한 인재를 집중적으로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다섯차례의 상시채용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1년부터 매년 열어오던 현대차 채용설명회인 ‘현대차 잡페어’를 지난해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는 아예 폐지했습니다. 채용시 뽑히는 신입사원의 80%이상이 이공계 출신이기에 이들의 역사관과 인문학적 소양 평가를 위해 현대차는 2013년 하반기 공채부터 역사에세이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이공계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없앴습니다.
그러면서 채용은 철저히 직무중심으로 바꿨습니다. 바로 지난해부터 도입한 직무 중심의 우수 인재 발굴 프로그램 ‘H리크루터(H-Recruiter)’를 통해서입니다. H리크루터는 현업의 직무 전문가들이 대학의 랩실, 연구실, 동아리 등을 찾아다니면서 각 직무 분야의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우수 인재로 풀(Pooling)이 되면 해당 직무 분야의 채용 공고에 한하여 채용 특전 (최종면접 기회 부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해는 주요 미래비전 직무 중심으로 H리크루터를 시범운영하였지만 올해부터는 전 부문으로 확대하여 본격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대차의 수시공채 방침에 현대차그룹 계열사들도 올해부터 수시채용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현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인재’를 뽑겠다는 것입니다.
◆1957년 시작된 삼성 채용의 역사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한 기업의 처절한 몸부림이 눈에 그려질 정도입니다. 채용에 있어서 현대차에 견줄 만한 국내기업은 당연히 삼성입니다. 사실 국내 기업 채용의 역사는 ‘삼성·현대차의 채용역사’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 두 기업의 채용방식을 벤치마킹해 왔기 때문입니다. 채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현대차보다 삼성이 더 컸습니다. 삼성은 1957년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신입사원을 공채했을 뿐 아니라,1993년에는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대졸 여성을 공채(139명)로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의 입사 필기시험인 인·적성검사도 삼성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1993년 “세계 최고 수준의 채용도구를 만들라”는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로 2년 연구끝에 SSAT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후 현대차 인적성검사(HMAT), SK종합적성검사(SKCT), LG 인·적성검사, 롯데 조직·직무적합도검사(L-TAB), 포스코 인·적성검사(PAT) 등 다른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검사도구를 잇따라 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삼성의 채용방식에 있어서 변화는 2014년 1월 ‘대학총·학장 추천제의 무산’이 큰 분수령이 됩니다. 2014년 1월 15일 오전 10시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이인용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공채제도 개편안을 발표합니다. 개편안의 주된 핵심은 서류전형 부활과 대학총·학장 추천제 도입을 통해 연간 20만명에 이르는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이후 GSAT란 명칭으로 통일) 응시인원을 3분의1로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전국 200여개 대학에 총장 추천인원을 할당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되고, 결국 발표 13일만에 삼성은 총장 추천제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게 됩니다. 삼성은 이 일후 딱 10개월이 지난 그해 11월 5일 ‘직무적합성과 창의성 면접’을 통해 공채제도를 바꾸겠다고 발표합니다.
이렇게 삼성이 채용제도를 바꾸려고 했던 배경은 매회 채용시마다 10만명(상·하반기 20만명)에 이르는 구직자들이 삼성으로 몰려 사회적 논란이 됐기 때문입니다. 매년 4년제 대학졸업자가 30여만명임을 감안하면 60~70%의 대학졸업(예정)자들이 ‘삼성맨’이 되고자 몰리면서 삼성으로서도 큰 부담이 됐습니다. 지난 1995년부터 삼성은 일정수준의 학점(3.0/4.5만점)과 어학성적을 보유한 지원자는 누구나 SSAT를 볼수 있도록한 ‘열린채용’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 공채때 5만명이던 SSAT응시자는 2011년 6만명, 2012년 8만명 그리고 2013년에는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삼성 입사지원자가 급증하자 ‘삼성고시’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면서 부작용이 초래된 것이지요.
삼성은 2015년 하반기 공채부터 열린채용 대신 ‘직무중심 채용’을 들고 나옵니다. 서류전형 단계에서 ‘직무적합성 평가’를 하고 이를 통과한 지원자만 필기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삼성은 직무적합성 전형에서 기술·연구개발직은 전공 이수과목과 학점으로, 영업·경영지원직은 직무에세이로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로인해 삼성 지원자는 이전보다 절반정도로 줄고 언론에서도 ‘삼성고시’ ‘삼성낭인’이란 용어가 점차 사라지게 됐습니다.
삼성은 2017년초 또 한번 채용에 변화의 모멘텀을 줍니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미래전략실도 해체됐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그동안 미전실이 중심이 되어 그룹공채를 주도해 왔으나. 미전실의 해체로 각 계열사별로 채용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채용공고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 금융계열사, 기타 계열사들이 하루 간격으로 채용공고를 올리는 방식을 취합니다. 다만, GSAT는 수험생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날 치르고 있습니다. 삼성은 지난해부터는 GSAT에서 상식과목을 없애면서 현대차, SK, CJ 등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현대차가 수시공채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SK,LG,롯데 등 주요기업들은 아직까지는 대졸공채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채용에 변화를 주면 구직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미 2017년부터 공채를 중단하고 대학의 조선학과를 중심으로 추천채용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조선업 불황때문입니다. 각 산업의 불황이 이어진다면 채용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수가 줄면서 국내 산업이 위기에 처하고 중국·미국 등의 보호주의 무역이 심화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채용관행도 공채에서 수시채용으로 변하지 않겠냐”며 씁쓸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현대차의 수시공채는 어쩌면 국내 채용시장 변화의 신호탄이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끝) /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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