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취재차 찾았던 주총장 풍경이 새삼 떠오른 것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의 모습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80여개 시민단체를 청와대로 초대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마무리하며 “경청하는 자리로 생각하고 있다”며 “생생한 의견들을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행사에 앞서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환경과사람들, 여성단체협의회 등 보수성향의 단체를 초청했다고 부각시켰다.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현장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듣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양한 취지를 듣겠다는 취지였지만 시간상 제약 탓에 10명의 발표자가 사전에 정해졌다. 행사 진행을 맡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은 “시간이 충분치 못해서 부득이 사전에 말씀순서를 정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마이크를 건넨 곳은 어딜까. 이 수석은 “우리나라 인권의 지킴이, 민변의 김호철 회장께서 해주시겠다”며 김 회장에게 첫 발언권을 내어줬다. 김 회장은 “대통령께서도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지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이 든다”며 사법 개혁 문제를 꺼내들었다. “미완의 사법개혁을 완성해 주실 것을 바란다”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사법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사법개혁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후 이어진 발표 역시 ?부처별 개혁과제 점검 및 선거제도 개혁(참여연대) ?재벌개혁(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정부 소통위원회(원주시민사회연대) ?마을공동체 기본법(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등이 주를 이뤘다. 시민단체의 의견이자 문재인 정부의 중점 과제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된 상황은 우연일까. 첫 마이크를 청와대가 꼽은 보수단체에 건넸으면 어땠을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시민단체의 건의를 발판삼아 더욱 사법·재법 개혁에 속도를 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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