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앞서가는 독일
소재에 투자 늘리는 일본
규제에 막혀 손 놓은 한국
[ 전설리 기자 ]
“다시 모든 소재를 독일과 일본에 의존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의 말이다. 한국은 산업화 초기부터 대부분의 고부가가치 산업 소재를 독일과 일본에 의존했다.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 소재 국산화를 이뤘다. 강 회장은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고 있는 경영 환경에서 더 빠른 속도로 적재적소에 투자하지 않으면 시장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일본이 앞서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독일과 일본은 미래를 내다보고 신소재 3차원(3D) 프린팅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사업화가 가능한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강 회장을 1일 서울 마포 중견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산업 발달 속도가 엄청난데 한국은 규제 등에 막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위기감을 토로했다.
“특이점 오는데 한국은 손 놓고 있어”
강 회장은 몸으로 위기를 느끼는 듯했다. 그는 “산업 기술 발달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정보 처리 속도 등 기술 발달로 과거 10~20년간 이뤄지던 변화가 1~2년 새 벌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가 경영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신영을 예로 들었다. “자동차 소재와 배터리 등 부품 시장을 보면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느낄 수 있다”며 “3D 프린팅 발달로 머지않아 DIY(소비자가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제품) 방식으로 차를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강 회장은 ‘특이점’에 빗대어 경영 환경의 변화를 설명했다.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의미한다. 그는 “변화는 모르는 사이 계속된다. 혁신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혁명처럼 푹 터져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게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이런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게 강 회장 주장이다. 그는 “한국엔 엔지니어에게 자동차 3D 프린팅 기술을 가르치는 곳조차 없다”며 “어느 순간 엄청난 돈이 될 연구에 투자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기술 투자는커녕 한국 경영자들은 당장 제대로 생산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주52시간 근로제 때문이다. 지난달로 주52시간 처벌 유예(계도) 기간이 끝났다. 강 회장은 “(탄력근로제 도입 여부는) 기업은 물론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달린 문제”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경사노위 위원 7명 중 한 명으로 협상에 참여했다. 경직된 노사관계도 걱정했다. 강 회장은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신모델을 생산하기로 결정하면 1차부터 마지막 협력업체까지 동시에 투자하는데 파업 때문에 생산을 못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협력사 몫”이라며 “생산현장에선 계속 생산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가정신 키우게 해 달라”
강 회장은 “기업의 성장을 옥죄는 규제가 기업가정신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가정신은 의지”라고 말했다. 1980년대 삼성이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 반도체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란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30년 뒤 한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는 “반도체 성공 신화는 의지의 힘”이라며 “기업가의 의지를 꺾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중견련은 5년 전인 2014년 법정단체로 출범했다. 2017년 중견기업 정책업무는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다. 모두 강 회장 임기 내 이룬 성과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이란 인식은 여전하다. 중견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고 강 회장은 말했다. 그는 “한국의 무역 규모는 세계 6위, 최근 2년간 무역 규모는 1조달러를 넘었지만 수출 10억달러 이상인 국내 기업은 4000여 개로, 전체 360만 개 기업의 0.1% 수준”이라며 “이는 잘못된 산업구조”라고 지적했다. “독일과 일본 등은 수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견기업을 육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 회장은 “청소 아주머니를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삼구아이앤씨, 수많은 중소기업 제품을 유통하는 다이소, 셋톱박스로 세계 시장을 개척한 휴맥스 등은 모두 히든챔피언이자 중견기업”이라며 “이런 중견기업을 많이 육성하기 위해 규모에 의한 차별을 없애고, 성장 사다리를 막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호갑 회장 약력
△1954년 경남 진주 출생
△1973년 진주고 졸업
△1978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조지아주립대 회계학 석사
△1999년 (주)신영 대표이사
△2008년 APEC기업인자문위원회(ABAC) 자문위원,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고위자문위원
△2012년 지식경제부 글로벌전문기업포럼 회장
△2013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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