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물방울을 머금은 풀잎 사이로 달팽이가 보였다. 긴 겨울잠을 자고 나왔을 것을 생각하니 자못 정감이 갔다. 어린 시절 방과 후면 논두렁을 따라 달팽이를 찾곤 했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양쪽 더듬이를 치켜세워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달팽이는 몸에 골격도 없으면서 무거운 집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실로 연약한 생물이다. 시골의 논밭에서 농작물을 주로 먹지만, 튼튼한 껍데기를 만들기 위해 칼슘 성분의 흙을 먹기도 한다. 발에서 끈적끈적한 점액을 내뿜으며 애쓰듯이 기어 다닌다. 하지만 언제나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다.
요즘은 급격한 도시화로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달팽이는 여전히 여유와 느림의 미학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상추 안에 달팽이를 잡아 오면 쌀을 드려요’라는 로컬푸드 매장의 행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농산물에서 작은 생명을 발견한 대다수는 순간 놀랄 것이다. 하지만 달팽이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곳에 산다. 그래서 우리는 무공해 채소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달팽이가 농작물의 잎을 먹는다는 게 아쉽지만, 친환경 농산물의 살아있는 인증마크인 셈이다.
프랑스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중에 에스카르고(escargot)라는 요리가 있다. 고급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에서 포도나무 잎을 먹고 자란 달팽이로 만든 음식이다. 쫄깃하고 고소한 육질에 단백질, 무기질과 필수 불포화 지방의 영양소가 더해진 건강식이다. 국내에서도 퓨전한정식 전문점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다양한 달팽이 요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농업인들에게도 새로운 농가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달팽이에게서 배워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 바로 ‘느리고 여유 있는 삶’이다. 이 일환으로 달팽이를 로고로 한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 한창이다. 1985년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시작한 슬로푸드 운동이 도시와 삶 속으로 확대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15여 곳의 지방자치단체가 슬로시티로 인증받아 ‘슬로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지역 농산물로 슬로푸드를 만들고 전통문화와 토산물을 내세워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을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얼굴에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적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달팽이는 느려도 늦지는 않다’는 말을 반추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바쁜 일상이지만 자신만의 텃밭을 가꾼다든지, 농촌을 찾아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농촌은 누구에게나 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지 않은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