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안보 위협하는 현실적 문제
비핵화, 우리 생존의 기본전제 돼야
김지진 < 변호사·대한국제법학회 정회원 >
핵무기 사용은 국제법상 합법일까. 핵무기 사용이 국제법상 적법한지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94년 유엔총회의 정식 요청을 받아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제시했다. 그 결론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차이가 있다.
권고적 의견의 핵심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우선 ICJ는 핵무기가 지닌 무서운 파괴력과 대량살상이라는 결과물을 고려할 때 핵무기를 사용하는 건 일반적으로 국제인도법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견 상식과 부합하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국제인도법은 20세기 초반,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무기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명 살상이 이전 전쟁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데 대한 반대급부로 발전돼온 법이다. 무력분쟁에 영향을 받는 사람과 재산을 보호하고, 분쟁 당사국 간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과 방법을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인지뢰도 그 파괴적인 살상력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피해로 인해 국제인도법상 금지되는 대표적 무기 중 하나다.
따라서 핵무기 사용이 국제인도법에 반한다는 ICJ의 의견은 핵무기에 대한 새로운 법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해 핵무기도 대인지뢰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할 가능성이 크고, 그런 일이 2차 세계대전 말미에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를 전쟁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마도 국제인도법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국제인도법의 일반원칙에 따른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ICJ는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극단적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는 핵무기 사용이 일반적으로는 국제인도법에 위반되겠지만 엄중한 국가 안보가 걸린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법인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ICJ는 그들이 판단을 유보한 극단적인 상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관련해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국가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협상이 결렬된 이후 상반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어느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현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적어도 제주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했고 이를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국제법은 핵무기 사용의 합법성에 관해 그 어떤 확실한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핵무기 사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지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라도 북한 핵무기가 우리 안보에 실질적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만의 비핵화 논리를 마련해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부인할지 모르지만, 현 정부의 비핵화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비핵화와 평화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평화의 종착역이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의 종착역이 평화다. 북한의 비핵화는 우리 생존의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 이런 목표 아래 이제는 북한 핵무기에 대응하는, 보다 정교하면서도 대담한 전략이 요구된다. 비핵화에서 대한민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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