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불륜 영화인줄 알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극한의 상황에 놓은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전하는 작품이었다. 불륜을 합리화하기 위한 불편한 미화 따윈 없었다.
영화 '미성년'은 도입부부터 파격적이다. 고등학생인 주리(김혜준 분)는 학원도 땡땡이치고 아빠 대원(김윤석 분)의 회식 장소를 몰래 찾아갔다. 그곳은 대원의 불륜녀 미희(김소진 분)가 운영하는 오리요리 전문점이다. 미희는 주리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인 윤아(박세진 분)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빠와 친구의 엄마가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어떻게 행동할까. 주리는 윤아에게 "너희 엄마 때문에 그렇다"고 책망했다. 윤아는 그런 주리가 미웠고, 결국 주리의 휴대전화로 온 그의 엄마 영주(염정아 분)의 전화에 "우리 엄마가 당신 남편과 바람을 피워서 임신까지 했다"고 폭탄 발언을 퍼부었다.
이 모든 사건이 시작 후 10여 분 만에 발생한 것. 불륜이 알려졌을 때 당사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미성년'은 그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살피는 영화다.
바람 핀 아빠는 밉지만, 엄마가 상처받을 게 두려워 가정의 지키려는 주리, 어린 나이의 자신을 낳고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음에도 사랑 때문에 세상의 지탄을 받게될 엄마가 안타까운 윤아의 고군분투기를 극의 중심축으로 삼고 영주와 미희의 섬세한 감정 변화가 극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사건의 도입부터 해결까지 모두 전개 과정에 주리와 윤아가 있다. 극 중 나이는 17살. 아직 성년이 아니기에 다소 서툴긴 하다. 감정이 앞서면서 학교에서 강화유리 창문을 깨트릴 정도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치고받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성숙한 의식을 갖고 상황에 대처한다.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여기에 2년째 각방을 썼지만 남편 대원을 믿었던 영주, 마지막 사랑인 줄 알았던 대원의 참모습을 보고 절망하는 미희가 '미성년'에 몰입감을 불어넣는다.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대학입시에 몰두해야 하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삼키는 엄마 영주, "내가 19살에 널 낳아 지금껏 키웠지만, 나도 여자"라고 부르짖는 미희 모두 공감되는 인물들이다.
이 모든 관계 설정과 연출이 신인 감독 김윤석에 의해서 이뤄졌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연극 연출을 했던 김윤석은 음악이나 미쟝센에 욕심내지 않고 이야기와 연기라는 영화의 기본에 집중했다. "사고는 어른들이 치고, 수습은 아이들이 하는 설정이 독특했다"면서 원작 연극을 보고 연출을 결심한 김윤석은 각본 작업부터 연출, 배우 출연까지 1인 3역을 맡았다. 그리고 꼬박 5년을 매달려 '미성년' 완성본을 내놓았다.
본인이 주요 배역 중 1명으로 출연하지만 '미성년'은 4명의 여성캐릭터들의 섬세한 감정선에 집중한다. 그가 연기한 대원은 '미성년'의 시발점이 된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또한 지질하고 옹졸하며 치사한 모습으로 가장 미성숙한 존재로 그려져 제목 '미성년'에 가장 부합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존재감은 가장 작다. 김윤석은 "그래서 캐스팅하기 힘들었고, 대원에 대한 분노가 4명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수준이 되면 안 됐기 때문에 그 중심을 맞추기 위해 제가 연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윤석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리고 '미성년' 곳곳에서 숨 쉬는 김윤석식 유머는 상영 내내 '피식'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불륜을 미화하거나 희화화하지 않으면서도 세밀하게 캐릭터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에 대해 염정아는 "감독님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보니 저희가 놓친 사소한 감정도 다 짚어주셨다"고 전했다.
반짝이는 신인배우들의 활약,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 여기에 신인배우 김윤석의 패기 넘치는 열정까지 더해지면서 '미성년'은 96분 러닝타임을 '순삭'하게 만든다.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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