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물질 ’생성 억제’에서 ‘배출 활성화’로 관심 전환 중”
생활관리 하면 치매 50% 감소…미세먼지도 발병 원인돼
“치매 치료제 연구는 그동안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세포 사이에 축적되는 걸 막는 게 주를 이뤘어요. 앞으로는 축적을 막는 게 아니라 배출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갈 전망입니다.”
류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54)은 치매 치료제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치매 치료제는 최근 바이오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국 바이오젠이 최근 임상 3상 중이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아두카누맙의 개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두카누맙은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에 축적되는 걸 막는 기전으로 연구됐다.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뇌 속 타우 단백질의 인산화(물질에 인산이 붙는 반응)도 치매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 역시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과 관련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축적돼 생기는 플라그(덩어리)가 타우 단백질 인산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을 막는 기전의 치매 치료제 연구는 아두카누맙처럼 실패를 거듭해왔다. 일라이릴리,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MSD, 존슨앤드존슨 등 다국적제약사들이 치매 치료제 개발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류 단장은 “과거 연구자들은 뇌에 림프관이 없는 줄 알았지만 5년 전에야 이것이 뇌에도 있다는 게 밝혀졌다”며 “베타 아밀로이드를 림프관을 통해 배출·순환시켜 축적을 막는 기전의 치매 치료제 연구가 앞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기초연구 단계지만 제약회사들이 관련 동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단장은 전북대에서 1986년 생물학 학사, 1992년 동물학 석사, 1999년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2002년 미국 하버드대 강사, 2002~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연구교수, 2003~2019년 미국 보스톤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그동안 발표한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이 120편 이상이다. KIST 뇌과학연구소가 지난해 보스턴 의대와 연구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최근 KIST 단장을 맡게 됐다. 보스턴 의대 교수 신분도 유지한다.
류 단장은 “베타 아밀로이드는 뇌의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이기는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는 “몸이 정상일 때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지만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등의 상황이 생기면 배출 기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치매는 가족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상이 치매에 걸렸으면 자손도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손이 손 놓고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류 단장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은 치매에 걸리고 다른 한 명은 걸리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일란성 쌍둥이 같은 사례가 왜 생겼을까요. 생활습관과 환경이 그 사람의 유전자 발현 방식을 바꾼 겁니다. 쌍둥이의 생활 환경을 조사해보니 한명은 살충제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이때 유독물질에 노출된 게 치매 유발 유전자를 활성화한 거지요.”
요컨대 특정 유전자가 발현될지 여부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이라고 부른다. 류 단장은 “외부 자극 때문에 특정 유전자가 발현된 경우라면 그걸 거꾸로 돌리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크론병은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에 발병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내면 크론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산균을 통해 인지기능을 회복하는 마이크로바이옴(체내 미생물) 활용 치료도 후성유전학과 관련 있다”며 “이런 치료를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하는 게 아주 머나먼 미래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매도 후성유전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류 단장은 “노화와 스트레스는 치매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며 “평소 적절한 운동을 하고 독성, 알코올 등을 멀리하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해 노화와 스트레스를 예방하면 치매를 늦추거나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미세먼지도 인체에서 독성을 발휘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 단장은 “치매 예방에 좋은 쪽으로 생활환경을 개선해 이를 5년간 유지하면 치매 유병률이 50%나 감소한다”며 “치료제 연구 못지 않게 국민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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