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재즈…시가…시간이 멈춘 듯한 쿠바, 잊을 수 없는 아바나의 밤거리

입력 2019-04-07 15:06   수정 2019-04-07 19:17

여행의 향기

쿠바여행기 - 오래된, 그래서 더 낯설지 않은 도시

올드카 타고 시내 투어
신나는 재즈음악에 흥이 절로




한때 미국 마피아가 향락의 도시로 만들었던 쿠바의 수도 아바나. 피델 카스트로의 1959년 혁명 이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미국과 단절됐다. 이후 구소련과 협력해 미국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소련체제 붕괴 이후 경제가 몰락하면서 1960년대에서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국가가 바로 쿠바다. 쿠바행 항공기의 한 승무원은 ‘It’s nothing’이라고 했다. 피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정권 이후 시장 경제가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혁명 정부 최고의 조력자였던 체 게바라가 여기저기 티셔츠에 프린팅돼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이하고 낭만적인 나라 쿠바를 다녀왔다. 쿠바는 내외국인용으로 분리된 특이한 화폐제도, 올드카, 재즈, 꿈틀거리는 시장경제, 사회주의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곳이다.

낯설지만 익숙한 그곳으로 출발

2016년 12월 우리 부부는 결혼했다. 결혼 휴가 2주 동안 갈 곳을 쿠바로 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이후 길게 여행을 할 여력이 생긴다면 가야 할 곳은 바로 ‘재즈와 낭만의 도시’ 쿠바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선택했지만 주변에서는 꽤 신기해했다. ‘왜 거기를 가?’ ‘위험하지 않아?’ ‘쿠바는 어떻게 알았어?’ 등의 물음에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왜 굳이 2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을까. 지금도 의문이지만, 결론은 반드시 갔다 왔어야 했던 곳이었고 다시 한번 더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우리가 여행을 떠난 시기는 겨울이었다. 두꺼운 옷을 몸에 칭칭 감고서 떠나 온 한국은 한파로 고생 중이었지만, 이곳은 선선한 바람 덕분에 부둣가에서 춤추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었다. 사전에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낡은 건물 사이로 어렵게 찾은 숙소는 누구에게나 열린 건물 3층에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면을 따라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올라 숙소 문을 열었다. 탄성부터 나왔다. 내부는 한눈에 보아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넓은 거실과 침실은 바로 밑 계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쿠바인들에게서 느꼈던 첫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서 구했을까. 쿠바에 이런 가구를 파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집주인은 결혼 축하 기념 케이크를 잘라주며 환하게 웃었다. 집주인은 숙소와 쿠바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었고 우리는 말레콘 해변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낯선 동양인 부부의 신혼여행은 묘하게 어색해 보이는 숙소에서 시작됐다.

올드카와 아바나 밤거리의 기억

집주인이 추천한 가까운 식당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었다. 뻥 뚫린 옥상에 유럽풍 장식을 입힌 주택가에 있는 흰색 벽이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근사한 식사 후 적당한 취기와 포만감을 안고 집으로 가려 했을 때 갑자기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치노?’ ‘노 코리안.’ 곧 올드카 드라이브를 하겠냐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호기심반 걱정반으로 올드카 쿠바 시가지 투어를 결정했다.


올드카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신나게 흘러나왔다. 엔진소리는 거칠었고 매연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올라탄 순간부터 분위기에 흠뻑 젖어 고개를 끄덕거리고 발도 동동 구르며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기사는 빠르게 스페인어로 이것저것 설명했고 우리는 ‘오예~!’라는 감탄사만 연발하며 음악에 온몸을 맡겼다.

몇 분 후 (구)아바나 시내에 도착했다. 내려서 걷다 보니 영화 ‘치코와 리타’가 생각났다. 화려한 밤의 도시였던 쿠바 시가지는 건물을 비추는 작은 조명에 기대 겨우 옛 시절을 기억해 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래로 나가려는 그들의 위대한 작은 도전들이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그 위대함에 가만히 손을 내밀고 발을 맞추어 걸었다. 떠나는 자는 머무는 자의 슬픔을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 관광객 눈에 보이는 즐거움보다 보이지 않는 슬픔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역사의 깊이를 따지며 쿠바의 밤거리를 걸었다.

시가 앞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호구가 된다.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쿠바는 그저 오고 싶었기 때문인지 우연히 들리는 음악과 바닷바람에 부식된 건물 사이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쿠바 관련 여행책을 펼쳤지만, 대충 넘겨보다가 치웠다. 페이지에 소개된 관광지 속 인파에 섞여 있기보다는 다시 찾아가지 못할 어느 골목 한쪽에서 아픈 다리를 쉬게 해주며 물 마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치노?’ 1층 계단에 나오자마자 누군가 또 물었다. ‘노 코리안’ ‘오 마이 프렌드’라고 하며 첫날 입구에서 숙소 호스트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 리멤버’라 답하며 짧고 무심한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치노?’ ‘노 코리안’ 지겹게 또 누군가 물었다. 한가로이 담배를 물며 벤치에 앉은 흑인이 ‘오~! 베이스볼’이라고 외쳤다. 서툰 영어로 쿠바를 누르고 세계야구대회 우승을 했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아픈 패배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를 이 멀리서 승자로 기억한다는 게 퍽 반가웠다. 등을 돌리자 방금 전 숙소 입구에서 급하게 친구가 된 그가 보였다. 갑자기 시가를 싸게 파는 곳을 알려준단다. 주기적으로 물건이 들어오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호기심에 따라 나섰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10분쯤 걸었을까 어느 가정집 2층으로 올라갔다. 몇몇 구매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친구라며 특별히 더 싸게 주라는 낯선 쿠바 친구의 친절과 함께 우리 돈 약 20만원 넘게 계산했다. 찜찜했지만 선물용이라는 핑계를 대며 와이프에게 호구로 보이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피던 코히바, 체게바라가 피던 몬테크리스토 중 고민 끝에 코히바를 구매했다. 피어보니 처음 몇 분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곧 머리가 어지럽고 하루종일 입에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말레콘 해변에서 달빛과 맥주를 벗삼아 흥을 높여주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역시나 그날 밤에도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리긴 했지만. 정말로 선물로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캐리어에 넣었던 시가는 한국에서 뚜껑을 열었더니 필 수 없을 정도로 굳어져 있었다.

숲의 도시 비날레스

두 번째 숙소로 이동한 다음날 아침, 첫날 에어비앤비 호스트 훌리오와 약속한 비날레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다. 그는 쿠바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미국으로 이민 간 그의 친척을 도와 숙박업을 꾸려가는 중이었고, 우리 같은 여행객을 상대로 올드카 투어 여행 상품도 기획해 진행하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로 쿠바에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그의 말이 퍽 서글펐다. 우리는 그의 제안에 따라 쿠바에서의 셋째날 담배공장이 즐비한 비날레스로 떠나기로 약속했고 그는 당일 아침 일찍 두 번째 에어비앤비 숙소로 마중을 왔다. 가는 길에 백 년 동안에 고독(100 years solitude)의 부엔디아 가족, 마르케스 작가와 쿠바 도로의 역사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미 사람에게 직접 들은 소설 이야기와 그들의 삶은 아주 흥미로웠다. 그는 22세에 결혼했다고 했다. 빠른 나이라고 하니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난 믿음이 있었어”라고 답했다. 하필 옆에 와이프는 자고 있었다.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 아바나에서 덜컹거리는 올드카를 타고 세 시간이 자나 서야 도착했다. 올드카 여행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고개가 아플 정도였지만, 그들이 품은 숲의 공기는 너무나 깨끗했다. 조용하고 맑은 숲속을 가로지른 도로에 간간이 자동차 바퀴 소리만 들렸다. 풍경이 좋은 핑크색 호텔에 들렀다 기념사진을 찍고 차로 조금 더 이동하니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 나왔다. 메뉴는 코코넛 음료, 닭고기 등. 굉장한 양이었다. 울창한 숲과 논밭을 풍경 삼아 먹는 점심은 매력적이었다. 다만 너무 많은 양이 나와서 반도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전통주 마시며 시가 연기에 취해

식사 후 목적지인 담배농장으로 갔다. 평범한 농부의 가정집이었다. 직접 말린 담배를 보여주었고, 시가가 만들어지는 공정에 대해 설명해줬다. 몇몇 외국인 관광객이 허리를 굽혀 좁은 문을 넘어 합류했다. 농부의 말을 훌리오가 영어로 통역해주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창이 넓은 카우보이모자 형태의 밀집모자를 쓰고 직접 담배도 말아 보았다. 아내는 피는 흉내를 냈지만 난 직접 피어보았다. 20만원이나 주고 샀던 그것과는 달랐다. 더 진한 것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숙했다. 몇 모금 피우고 그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농부의 딸과 아내가 있었다. 벽에는 담배 피는 농부 그림과 담배를 마는 손 사진이 걸려있었다.

농부의 아내가 전통주라며 마시라고 내어온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독했다. 양에서 직접 짠 우유라며 또 한 잔 내주었다. 한국의 것과는 달리 달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을 만했다. 먹고 나니 돈 통을 내밀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웃으면서 흔쾌히 얼마를 넣었다. 함께 움직였던 관광객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저녁 늦게야 도착했다. 피곤했지만 괜찮은 여행이었다고 우리 둘은 만족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옷을 갈아입었다. 시가 한 개피와 맥주를 들고 말레콘 방파제 앞으로 나갔다. 누군가 춤을 추었고 누군가는 키스를 했다. 100m보다 더 좁은 간격으로 서 있던 경찰이 어린 아이 한 명을 경찰차에 구겨 넣고 있었다. 웃는 이들과 우는 자들이 있었고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섞여 방파제 앞 길 건너 제한적으로 허용된 와이파이존에서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들고 온 시가는 역시나 반도 피우지 못하고 껐다.

쿠바=글 홍기표 여행작가 alivemusickr@gmail.com

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정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는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될 추세다. 한국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은 없다. 캐나다, 멕시코, 일본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다. 관광지 이외에서 영어 소통은 불편한 편이므로 간단하게라도 스페인어를 알아두는 게 좋다. 화폐는 페소를 사용한다. 생활물가와 여행물가가 다르다. 여행객은 외국인 전용화폐 CUC(세우세)를 사용해야 한다. 0.9CUC가 약 1USD. 시간은 한국보다 13시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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