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만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저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흐른다
시집 <드라이아이스> (문학동네) 中
봄날 인테리어가 한창입니다. 여기저기 봄빛 가득한 물건들 사이에서 작은 나사 하나를 손에 들고 골똘히 생각합니다. 이곳저곳 삐걱대는 곳이 없는지 만지고 고치고 하다 보면 들고 있는 나사 하나 금세 산골이 되고도 남지요. 작은 나사 하나에 푸르디푸른 산과 물소리 흐르는 골짜기와 눈부신 햇살까지 들었다고 생각하니 흔들리는 의자 등받이를 나사로 조이는 일도 싱그럽네요. 나사를 조일 때 나는 쇳소리를 나선이 몰고 온 새소리로 들으며 오늘 밤 찾아올 어둠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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