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눈 돌아가서 이판사판 칼부림 났을 것 같다"
"아이돌보미가 아니라 악마 돌보미"
"안 보려 했지만 결국 영상을 봤다. 정말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눈물이 나서 영상 끝까지 보지도 못하겠다. 우리 아이와 개월 수가 같은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니 아이가 없어도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천구 아이돌보미 학대' 영상을 접하고 분노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학대 등을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숱하게 접하면서 단련이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돌보미 학대 영상은 보는 내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저 어린 것이 얼마나 평소 당했으면 숟가락을 보면서도 도리질을 하는 걸까.
부모 말에 따르면 아이는 이제 밥을 먹으면서 혼자 자신의 따귀를 때리기도 한다니 정말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슬픔과 분노가 북받친다. 저 어린 것을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내 아이는 괜찮을까."
아마 비슷한 사정에 놓여있는 맞벌이 부모라면 모두 CCTV 설치를 고민하게 됐을 것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이를 학대하는 돌보미들이라면 CCTV가 설치돼 있는 곳에서는 당연히 아이를 예뻐하는 척하면서 사각지대를 찾으려 할 텐데 몰래 찍은 CCTV 영상도 폭력의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일까.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께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CCTV 영상은 '몰카'와 다름없다고 한다.
풀썩.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이를 맡기는 마음에서 돌보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동의를 구하기 위해 CCTV 설치 얘기를 꺼낸다면 '나를 못 믿는 거냐. 그렇게 불안하면 직접 키워라'하고 박차고 나가버리지는 않을지, 반발심을 생기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변호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 주변에 녹음기를 두고 녹음을 했을 경우에도 아이와 돌보미가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은 정보통신법에 따라 제3자의 불법 녹음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돌보미 혼자 목청 높여 화를 내거나 때리는 상황 등이 담긴 파일이라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의사소통 능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유아의 경우 정 불안하다면 CCTV를 몰래 설치하는 것보다는 녹음기를 이용하라는 것이 결론이다.
참 법이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현행법이 그렇다는데 어찌하랴.
말 못 하는 아이의 상황이 담긴 음성을 녹음하는 게 불법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이제야 털어놓지만(ㅎㅎ) 내 경우에도 아이가 7살 때까지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아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초기에 몰래 녹음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요즘은 당당하게 CCTV 설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난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 돌보겠다고 오신 분한테 '당신이 어떻게 아이 보는지 CCTV로 지켜보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기왕 일 할 거면 믿고 맡겨야지' 하는 생각과 '아이와 단둘이 계신 베이비시터가 어떻게 아이를 돌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 내 눈에 뜨인 것은 MP3. 그 제품에는 최장 8시간까지 음성 녹음이 가능한 기능이 있었다.
어디에 둬야 들키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전원을 켜고 에어컨 위에 살짝 놓아두고 출근했다.
회사에서도 내내 궁금해서 퇴근시간만 기다려 졌다.
드디어 귀가. 베이비시터께 '안녕히 가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MP3를 플레이시켰다.
두근 반 세근 반. 과연 어떤 상황이 담겨있을 것인가.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들렸다. 평소 나와 얘기할 때도 항상 밝고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셨던 베이비시터께서는 내가 출근하자마자 '○○야 노래 틀어줄까?" 하고 동요를 틀어줬다. 잔잔하게 동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야 사랑해', '○○이 아이 예뻐',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 애정표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순간 베이비시터를 잠시 의심하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 엄마인 나도 저렇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고 사랑 가득 담긴 말을 종일 건넨다는 건 어려운 일인데...' 싶었다.
뭔가를 먹이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말끝에는 '○○야 사랑해'가 이어졌다.
8시간 녹음을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어서 30분 만에 꺼버렸다.
베이비시터를 만난다는 건 정말 '복불복'이라고들 하는데 이렇게 아이를 예뻐하는 분을 만나다니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인가.
한번 공고해진 된 믿음은 이후 직장에서 내 마음을 늘 평온하게 유지시켜 줬다.
물론 한 베이비시터를 계속 쓴 것은 아니었고 사정에 따라 4~5번 바뀌었지만 뉴스에 나오는 악독한 베이비시터는 극히 일부일 것이니 학대 영상을 본 워킹맘들이 너무 불안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선배 워킹맘이 된 후 후배들이 베이비시터를 쓸 때 '걱정된다'라고들 하면 짐짓 태연한 척 "그래도 계속 일하겠다고 선택한 이상 믿고 맡겨야지. 그렇게 불안해하면 회사 일도 집중 안 되고 죽도 밥도 안 돼"라고 조언했다. 녹음까지 해가며 불안해했던 경험은 뒷주머니에 숨긴 채 말이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딱 좋았으련만 한 마디 잔소리를 더했다. "아이도 엄마가 불안하면 그 불안감을 다 느껴. 엄마가 의연해야 아이도 심적 안정이 되는 거야."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건데. 가뜩이나 불안한 상황에서 내 얘기를 들은 후배는 '나만 의연하지 못한건가' 얼마나 더 불안해 졌을까.
믿지 못하고 몰래 녹음기를 켜놓았던 당시의 베이비시터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을 전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를 돌보면서 이 같은 뉴스에 힘이 빠지고 괜한 차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할 정부 아이돌보미 분들께서도 힘을 내시길.
워킹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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