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는 경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경차 기준이 배기량 800㏄ 미만에서 1000㏄ 미만으로 바뀐 2008년 이후 올해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이 10만 대를 밑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큰 차를 고르는 사람이 늘어난 데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젊은 층이 ‘생애 첫 차’로 고를 수 있는 차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국내에서 팔린 경차는 2만6653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만419대)과 비교해 12.4% 쪼그라들었다. 기아자동차의 모닝과 레이, 한국GM의 스파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추세로 보면 연간 판매량이 10만 대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경차는 1991년 나온 대우자동차 티코다. 경차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계속 커졌다. 한때 새로 팔리는 국산차 5대 중 1대가 경차일 정도였다. 취득·등록세 면제와 자동차세 감면, 유류세 환급 등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2012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012년 21만6752대에 달했던 국내 경차 판매량은 매년 줄어 지난해 13만5839대까지 떨어졌다. 올해 판매량이 10만 대 수준에 그치면 7년 만에 ‘반 토막’ 나는 셈이다.
경차의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2000년대 말 2만달러 수준에 머물던 1인당 국민소득(GNI)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만달러를 돌파했다. 과거에 비해 높지 않은 유가 탓도 있다. 2010년대 초 L당 1900원을 넘었던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달 기준 L당 1300원대까지 하락했다. 기름값 부담이 줄면서 높은 연비와 유류세 환급 등 경차의 ‘매력’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이 경차 대신 고를 수 있는 ‘카드’도 늘었다. 소형 SUV가 대표적이다. 2014년만 해도 소형 SUV 판매량은 3만 대를 밑돌았지만, 지난해엔 14만 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4년 만에 4배 넘게 시장이 커졌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SUV의 단점(나쁜 승차감)은 줄어들고 장점(넓은 적재공간 및 탁 트인 시야)은 부각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연비에 민감한 소비자는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차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당장 경차의 부활을 기대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완성차업체들이 당분간 신형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차의 최대 경쟁자인 소형 SUV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는 소형 SUV 코나보다 더 작은 크기의 베뉴를, 기아차는 소형 SUV SP2를 내놓을 계획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세단과 SUV의 강점을 지닌 소형 크로스오버차량(CUV) XM3를 내년부터 판매한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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