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준/이지훈/정의진 기자 ] 정부는 8일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일산화탄소(CO) 미연탄화수소(UHC) 등 유해물질이 다량 배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LNG발전소 전반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라도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유해물질 배출 논란이 10여 년 전부터 제기된 것이어서 ‘뒷북 행정’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한국동서발전이 운영하는 LNG발전소에서 CO, UHC가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다른 발전회사 시설에는 문제가 없는지 실태 조사를 벌일 것”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본지 4월 8일자 A1, 3면 참조
동서발전에 따르면 일산 LNG발전소는 출력이 낮은 상태일 때 불완전연소가 일어나 CO, UHC를 최대 2000~7000ppm(공기 분자 100만 개 중 해당 물질 분자 수)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의 경우 오염물질 허용 기준(50ppm)의 40~140배에 이른다. 지역 주민들은 “발전소 주변에서 매캐한 연기가 발생해 목이 아프다”고 호소해왔다. 동서발전은 10년 가까이 이 같은 지역 민원을 묵살하다 2017년 뒤늦게 자체 조사를 벌여 유해물질 배출 사실을 확인했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LNG발전소 들어선 뒤 후두염·천식 생겨"
10년간 주민 호소에도…발전사 "문제없다" 묵살
“아침에 산책할 때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면서 목이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가스발전소 때문인 것 같은데 뭔가 조치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 6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의 절박한 호소다. 이 지역엔 한국동서발전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8기가 있다. 동서발전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일산발전소에선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CO)와 미연탄화수소(UHC)가 ‘높음’ 수준으로 배출된다. CO는 최대 2000ppm(공기 분자 100만 개 중 CO 분자 2000개), UHC는 최대 7000ppm까지 검출됐다. 전문가들은 2000~7000ppm이면 지역 주민의 건강 피해가 우려될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인천 서구 청라3동 주민들의 목소리는 더 절실했다. 이 지역엔 반경 3㎞ 이내 LNG발전소 발전본부가 4개나 있다. 6세, 8세 아이를 두고 있다는 B씨는 “2012년 여기로 이사온 이후로 평생 없었던 후두염이 생겼다”며 “아이들도 천식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청라3동 인근에는 석유화학 공장도 있긴 하나 LNG발전소가 대수 기준으로 43기나 있다.
일산 LNG발전소의 황연(노란 연기) 발생과 관련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은 2008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전사들은 ‘별문제가 없다’며 묵살했다. 2008년 4월 민원에 “질소산화물(NOx)은 기준치 이하로 배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문제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CO, UHC 등으로 초래된 것인데 규제 안에 있는 유해물질은 잘 관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넘어간 것이다. 2009년 2월 다시 민원이 들어왔을 때는 “동서발전은 환경관리 우수 기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동서발전은 2017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설비 개선에 착수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매한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부 LNG발전소에서 기동 초기 때 불완전 연소로 인해 CO, UHC 등이 발생한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도 “배출 시간이 짧고 CO 등은 규제 대상도 아니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제서야 LNG발전소 전반을 실태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늑장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정부가 ‘탈(脫)원전’ 기조 아래 LNG발전소를 확대해야 하는 만큼 “LNG발전은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대처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들은 LNG발전 유해물질 발생이 일부 발전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발전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LNG발전소는 시설이 낡다보니 불완전 연소로 유해물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 LNG복합화력발전소 187기 가운데 2000년대 이전에 준공된 시설은 82기로 43.9%에 이른다.
서민준/이지훈/정의진 기자 morandol@hankyung.com
관련뉴스